수용, 완전한 항복
2024년의 마지막 날 나는 크레타섬에 있었다. 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보며 감동을 받아 결심했다. 내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하겠다고. 사실 결심하던 그 순간 마음속에 잠깐의 머뭇거림이 있었다. 큰 고난이 닥치더라도 이 맹세를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슴 벅차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 받은 나는 뭔가를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두 눈 질끈 감고 다짐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다행히도 지난 한 달 나를 압도하는 고난은 없었다.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거의 1년째 쓰고 있는 (듣자 하니 송혜교 배우도 쓰고 있다는) 감사일기 덕분일까.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며 잘 지낸 것에 감사하다.
한 달을 마무리하는 오늘, 김주환 교수님의 유튜브에서 내 결심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될 힌트를 하나 더 얻었다. 혹시 상상도 못 한 큰 고난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럴 때는 그저 수용(완전히 항복) 해야 한다. 진흙탕에 빠졌을 때는, 조심하지 않은 나를, 길 관리를 잘못한 공무원을 비난하기보다, 얼른 발을 빼내고 옷과 신발을 닦아내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다는 오유지족의 자세를 키울 필요가 있다. 그것이 수용이다. 수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집착을 버려야 한다. 특히 나에 대한 집착(아집이자 에고)을 버려야 한다. <금강경>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제자 수보리가 부처님께 첫 질문을 던졌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까요? 항복기심(수용)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부처님의 답은 이러했다. 모든 중생이 멸도할 수 있도록 도와라. 즉 남을 위해 살아라. 그런데 그 일을 네가 했다는 생각을 버려라. 즉 아집을 버려라.
교수님은 <반야심경>도 소개해주셨는데, 핵심은 두려움 없는 상태(무유공포)였다. 수용의 결과다.
불교에 심취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다시 떠오른다.
I hope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오유지족의 끝에 다다르면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집착할 것이 없으니 저항할 일 또한 없는데 두려울 일은 무엇이 있겠는가.
오늘 들은 강의 내용이 영단어 몇 개로 집약되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작가는 멸도에 다다랐던 것일까.
작년 말, 머뭇거리면서 스스로도 예감했던 바지만 내가 능력 밖의 거대한 결심을 했던 것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바다의 풍경이 지금도 머릿속에 재생되는데,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심을 하지 않겠나 싶다. 지레 겁먹지 말고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