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니
2023년 가을, 최인철의 《굿 라이프》를 읽었습니다. 행복에 대한 심리학자의 책입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학자들이 인간 의식의 내용을 분석했을 때 의식이 크게 넷(WIST)으로 나뉜다는 점이었습니다.
- 일(Work)
- 사랑(Intimacy)
- 영혼(Spirituality)
- 초월(Transcendence)
이것들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주제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과 사랑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둘은 분명 제 의식을 지배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고 살 것인지 오랜 고민 끝에 직장을 구했고, 평생 함께할 사람을 찾아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영혼과 초월은… 낯설었습니다. 네 영역으로 나뉜다면 각 영역이 25%씩은 차지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당황스러웠습니다. 처음에는 종교가 없어서 그런가 했는데, 책의 설명을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영혼에 대한 관심은 종교를 갖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데요. 초월적 존재를 의식하는 것, 우주의 기원과 질서에 대해서 경외감을 갖고 사는 것까지를 포함한다고 해요. 성스러운 것(the sacred) 자체에 대한 예민한 의식을 갖고 사는 삶입니다.
초월에 대한 관심이란 의식의 중심에서 '자신'과 '현재'를 끌어내리고, 타인, 공동체, 미래 세대에 대한 관심, 자신의 삶을 통해 후대에 어떤 유산(legacy)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성과 초월은 연결되는 주제인 듯합니다. 영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 삶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노션 AI와 함께 탐구해 보기로 합니다.
영성(Spirituality)?
영성은 인간의 내면적 차원을 다루는 깊이 있는 개념입니다. 종교적 관점에서의 영성은 신성한 존재와 교감하고 연결되는 내적 여정을 의미합니다. 기도나 명상, 예배 등의 종교적 행위를 통해 초월적 경험을 추구하며, 종교적 가르침과 실천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또한 성스러운 텍스트나 전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노력합니다.
비종교적 관점에서의 영성은 무엇일까요? 먼저 자아와 우주와의 연결성에 대한 깊은 인식입니니다. 우리가 단순히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광대한 우주의 일부로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두 번째,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가는 내적 여정입니다. 이는 단순한 목표 설정을 넘어서는 진지한 자기 성찰의 여정이며, 종교적 신념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 경험입니다.
다음으로, 자연의 경이로움과 장대함을 깊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겸손히 받아들이며, 자연과 상호 연결된 존재로서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노력입니다. 단순한 환경 보호나 지속 가능한 생활방식을 넘어선달까요.
마지막으로, 일상의 스트레스와 혼란스러운 감정을 넘어 내면의 고요함과 안정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이는 명상, 자아성찰, 마음챙김 등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내면과 깊이 있게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지향합니다.
종교적/비종교적 관점 모두에서 영성은 자기 초월적 경험을 추구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자기실현을 넘어선 '자기초월'을 인간 욕구의 최고 단계로 보았습니다. 그는 자기초월이란 개인의 이기심을 넘어서 타인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보편적 가치와 연결되는 경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에서 김혜남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결론적으로 영성은 개인이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이해하고 연결하려는 노력의 총체입니다. 이는 종교적 신념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차원의 경험입니다.
신성(divinity)?
영성이란 게 뭔지 이제 좀 알 것 같기도 한데요, 또 새로운 용어가 나타났습니다. 여러분은 신성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최근에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소통 유튜브 강의를 듣고 있는데, '존중'을 주제로 하는 강의에서 등장한 표현입니다. 자기존중과 타인존중을 위해서는 내 안의 신성(divinity)을 찾아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신성(divinity)은 신성함, 거룩함, 성스러움을 의미합니다. 종교적 맥락에서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의 특성을 가리키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고귀하고 존엄한 가치를 뜻합니다. 신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러한 깊은 가치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단순한 자존감이나 자신감을 넘어서는 더 깊은 차원의 자기 이해와 수용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자신과 타인 안에 있는 이러한 신성을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기존중과 타인존중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강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맥락에서의 신성
요한복음 17장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구절은 신과 개인 사이의 깊은 영적 연결을 보여줍니다.
나마스떼(Namaste)는 힌두교와 요가 전통의 인사말로, "당신 안의 신성한 것에 인사드립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존재 안에 있는 신성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영적 겸손의 표현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자 내면에 신성한 빛을 지니고 있다는 영적 통찰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앞서 언급된 '내 안의 신성'과 같은 맥락의 개념입니다.
비종교적 맥락에서의 신성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절정경험'(peak experienc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대자연, 사막의 밤하늘, 바다의 수평선, 지리산 종주길의 장엄한 산맥과 구름을 마주할 때 깊은 경외심을 느낍니다. 내 안의 신성을 찾는 여정은 바로 이러한 경외심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는 '몰입(flow)'이라는 개념으로 절정경험과 유사한 상태를 설명했습니다. 몰입은 어떤 활동에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 감각을 잃고, 자아를 잊으며, 깊은 만족감을 느끼는 최적의 경험 상태입니다.
그는 이러한 몰입 상태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더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몰입 경험은 우리의 의식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자아를 성장시키며, 때로는 초월적 특성을 보입니다.
특히 몰입 상태에서는 자아의식이 일시적으로 사라지지만, 역설적으로 경험 후에는 더 강한 자아가 형성됩니다. 이는 신성을 경험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우리는 자아를 잃는 순간에 오히려 더 큰 것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연에서 느끼는 경외심, 완벽함에 대한 경험, 그리고 자신을 초월하는 특별한 경험들은 사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가 일상을 초월하여 더 큰 의미와 만나는 순간들입니다. 신성이란 결국 우리 각자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존엄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는 여정입니다.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드는 소중한 순간이 됩니다.
신비주의 우려?
내 안의 신성을 찾는다는 것이 때로는 비현실적이거나 신비주의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개념이기도 합니다.
신성 탐구는 자아성찰의 과정입니다. 명상이나 자기 관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합니다. 심리학 연구들은 자기 존중과 내적 성장이 정신 건강과 웰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또한 신성은 일상적 경험을 통해 발견됩니다. 특별한 의식이나 수행이 아닌,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네요.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이슬람교를 위한 변명』의 발간사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읽었습니다. 이제 종교와 영성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영역이 된 걸까요?
전통적 종교관의 변화와 함께 최근 10여 년간 '종교를 믿는' 신자의 숫자도 급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탈종교 현상'입니다… 그렇지만 탈종교, '종교를 떠난다'는 것이 곧 유물론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이거나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는 삶으로 향한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위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의 등장은 오늘날 달라진 종교지형의 한 모습입니다.
저는 우주에 대한 책을 즐겨 읽습니다. 작년에는 김상욱 교수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을 읽었고, 지금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읽고 있어요. 또 여행을 갈 때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합니다. 최근 크레타 바다를 보고 와서 이런 글을 썼죠.
본 적 없는 바다였다. 4단 파도를 장착한 바닷물이 끊임없이 나를 향해 왔다. 그때마다 하얀 술을 단 네 장의 카펫이 물 위에 올려져 있는 것 같았다. 물은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블루를 다 담고 있었다. 계속 쳐다보다가는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바다 너머로는 회백색의 초현실적인 디아 섬이 가만히 떠 있었다. 해변이 북쪽을 향하고 있어 해는 왼쪽에서 늬엇늬엇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고운 모래 위를 혼자 걸었다. 발을 뗄 때마다 작은 모래 먼지가 일어났다. 둥글게 다듬어진 조약돌을 하나 집었다. 2024년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마무리하는구나. 새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더 행복하겠다고 다짐했다.
브런치북으로 두 편의 여행기를 발행하면서 깨달은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나는 자연을 보러 여행을 간다는 것이었죠. 매슬로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모두 절정경험(peak experience)을 추구하는 것이었네요. 돌아보니 우주에 대한 관심은 10대 때부터 있었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감동받았던 20대의 특별한 기억도 있는데,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우주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고, 자연 앞에서 큰 기쁨과 한없는 겸손함을 경험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스스로를 영적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앞으로 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는 날이 올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