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유리 같은 마음으로 키우는 아이

노션 AI와 소설 쓰기

by RAMJI

일주일 후, 서윤은 지선이 소개해준 상담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못되어도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캐주얼해 보이는 복장에 머리칼은 어깨까지 자유롭게 떨어져 곱슬거렸다. 전문가라기보다는 일상에서 만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처럼 느껴졌다. 아, 그렇다면 이것은 의도된 전문 상담사의 모습인 건가.


"지선 선생님과 친구라고 들었어요. 반갑습니다. 어떻게 상담을 결정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음... 힘들어서요. 평범하게 잘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족관계도 일도 점점 어렵게 느껴져요."


"하나씩 이야기해 보시면 좋겠어요." 상담사의 목소리는 재촉하는 기색 없이 차분했다.


서윤은 무엇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상담받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닌데 괜히 왔나 싶은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아니야, 뭐가 되었든 실컷 말하자, 라고 자신을 다독이고 나니 출산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볕을 걸으면 땀이 나던 늦봄의 어느 날이었다. 임신 36주 차에 접어든 서윤은 회사 컴퓨터를 켜둔 채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까운 산부인과로 정기검진을 갔다. 평소처럼 혈압을 재고 소변검사를 했는데 의료진의 얼굴은 평소 같지 않게 심각했다. 임신중독증에 걸렸고, 산모도 아이도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즉시 큰 병원으로 가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했다.


젖병 하나 기저귀 한 장 사놓지 않았던 그녀는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겨 유도분만에 들어갔다. 무통주사 때문에 통증이 사라져서인지 초산은 원래 그런 것인지, 서윤은 타이밍에 맞게 힘을 주는 게 어려웠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서윤은 힘이 빠졌고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기가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곧바로 들리지 않았고, 의료진은 아기를 보여주지 않은 채 데리고 나가버렸다.


서윤은 아기를 보기 위해 매일 신생아중환자실로 향했다. 아기는 광고에서 보던 아기들의 모습과는 달랐다. 상상 이상으로 작고 말라서, 이마와 눈 아래 주름이 파여 있었다.


"출산이 생각 같지 않았군요." 상담사가 말했다.


서윤은 답했다. "네. 제 생각이나 노력과 관계없이 일이 흘러갔어요."


아기는 퇴원했고, 남편은 작명소에 가서 준호라는 이름을 받아왔다. 서윤은 준호가 TV에 나오는 다른 아기들처럼 통통한 아기가 되었으면 했다. 아이는 작게 낳아 크게 키우는 거라는 격려의 말도 주변에서 여러 차례 들었다.


하지만 준호는 젖을 먹는 듯하다가도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조용히 엄마 젖을 거부하곤 했다. 수유 간격을 늘려보아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엄마 가슴에 젖이 충분히 돌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라고 하자, 불안한 마음에 유축기로 젖을 짜내 병에 담아 주었다. 결국 분유로 바꾸었지만 준호는 분유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식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수유가 성공적이지 않았던 만큼 밥만큼은 잘 먹이겠다고 다짐했다. 서윤은 요리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이유식만큼은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준호는 엄마가 주는 음식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들기름에 쌀을 볶아 죽을 만들거나, 간을 해서 먹이거나, 아이가 관심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먹여도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서윤은 고집스럽게 육아책의 가르침을 따랐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서윤이 만든 이유식을 맛보고는 준호에게 "엄마가 이렇게 맛없는 밥을 줘서 먹기 싫었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서윤은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서윤에게 영유아 건강검진은 국가고시와도 같았다. 국가는 통계 시스템으로 아이들의 키와 몸무게를 줄 세워 순위를 매긴 결과표—서윤이 받아들이기에는 성적표—를 부모들에게 건넸다. 몸집이 큰 아이의 엄마들은 SNS에 결과를 올려 은근한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만 네 살 검진에서 준호는 몸무게 하위 3퍼센트라는 결과를 받았고, 결과지에는 '정밀검진 필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정작 소아과 의사는 정밀검진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날 이후 서윤은 달라졌다. 요리에 더욱 매진했고, 준호를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화를 내가며 음식을 떠먹였다. 화를 낸 날이면 어김없이 후회하고 아이에게 사과했다.


어느 날 저녁, 식사시간에 자리를 뜬 준호에게 서윤은 불같이 화를 냈다. 준호는 엉엉 울며 엄마를 피했고, 서윤은 가슴이 철렁했다. 한 시간쯤 지나 마음이 진정된 준호가 서윤에게 말했다.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게 싫어. 사실 오늘 아침이랑 점심도 억지로 먹었어."


그날 아침, 적은 양이나마 스스로 밥을 다 먹은 준호의 속마음을 모른 채 서윤은 준호를 크게 칭찬했었다.


서윤은 말했다. "준호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힘들면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


그날 밤 서윤은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글을 올렸다. 누구에게든 위로를 받고 싶었다.


"아이에게 해주어야 할 말을 했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가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밥 한 숟가락도 안 먹고 반찬 한두 가지만 먹는 모습, 맨밥만 조금 먹는 모습, 우유 반잔도 안 마시는 모습,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마른 모습을 제가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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