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사 II>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전 세계 (생산이나 소득 대비) 자본의 규모는 20세기 초나 지금이나 비슷한 수준인데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있다고 했다. 바로 자본의 형태다. 과거의 토지자본은 오늘날 부동산자본, 산업자본, 금융자본이 되었다. 옛날에는 땅을 가진 사람이 부자였고, 지금은 부동산, 공장, 돈을 가진 사람이 부자다.
자본의 모습이 각국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바뀌었을까? 영국에서는 의회 정치 발달로 인해 그 과정이 비교적 평화로우면서도 (부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던 걸로 추측된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일제강점기 기간에 지주제가 뿌리를 내렸고, 해방 후 38선 이북에서는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단행되었던 그 시기, 지주 세력이 한민당이라는 주류 당을 구성했던 그 시기에 우리나라의 자본은 어떻게 그 모습을 바꾸었을까?
미 군정 때는 (지주를 포함한 주류세력의 반대로) 토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다가 이승만 정부 출범 후 토지개혁을 실시했고, 일본인 귀속재산을 미 군정으로부터 이양받아 민간에 팔았다.
농지개혁
농지개혁은 유상 몰수 유상 분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개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영훈에 따르면 농지개혁의 결과 65%에 달하던 소작농 비중이 8%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소규모 자작농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그 여파로 농촌에 남아있던 신분차별이 없어져 상민도 문중을 조성하고, 시제를 지내고, 종친회에 가입하였으며, 부모 장례를 상여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영훈은 이것을 ‘유교적 민주화’라고 불렀다. 민주화된 농민들이 가문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한 결과, 그들의 자녀세대가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귀속재산 매각
한편 해방 후 일본인이 (미군에 빼앗겨) 놓고 간 재산(사업체, 부동산, 동산, 주식 등)이 이승만 정부에게 넘어왔고, 새 정부는 미 군정의 요구대로 이를 민간에 팔았다. 귀속재산처리법에 따라 연고자, 종업원, 농지개혁으로 농지를 매수당한 지주에게 우선 매각하도록 했다.
귀속재산 취득은 상당한 특혜였다. 일단 가격이 쌌다. 시장가격의 62% 수준이었다고 한다. 지주들이 땅을 몰수당하고 받은 지가증권은 증권시장에서 헐값에 거래되었는데, 매수자들이 귀속재산 대금을 지가증권으로 납입할 수 있어 이것도 이익이 되었다. 게다가 대금을 15년 동안 분할 납입할 수 있어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거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다.
이영훈에 따르면 1950년대 종업원 500명 이상의 대기업 22개 사 중 15개 사가 귀속사업체에 기원을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업들이 이후 인수합병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기업이 되었다.
지주에게 귀속재산 매각 우선순위를 주었던 점, 지가증권을 귀속재산 대금으로 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이승만 정부는 토지 자본가가 효과적으로 산업 자본가로 변신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어쨌든 이렇게 지주들을 달래서 농지개혁을 이루었다. 이영훈은 우리나라 농지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개항 후 농촌사회 근본을 이룬 지주제를 허물고 자작농이 다수가 되면서 농가의 생활이 안정되었다. 또 17세기부터 장기 추세로 진행해 왔던 소농 체계를 계승하였기에 이후 큰 혼란 없이 급속한 증산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저자는 소농경제에 기반하지 않는 농지개혁은 중남미와 다른 아시아 국가의 경험에서 보았을 때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 특히 우리처럼 식민 지배를 벗어난 나라들은 어떻게 토지(농지)를 배분했는지 궁금하여 오랜만에 코파일럿을 찾았다.
중남미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토지 분배 문제는 1492년 콜럼버스 이후 스페인-포르투갈 엘리트들에 의해 형성된 '아시엔다(hacienda)', 이른바 대토지 소유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스템은 소수 지배 엘리트가 원주민의 토지나 미개척지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며 관리·운영한 것으로, 독립 이후에도 지속되어 정치적 불안정, 경제 저발전,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했다.
20세기 초반, 사람들은 토지 개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1910년 멕시코 혁명에서 '토지와 자유(tierra y libertad)'를 슬로건으로 내건 사회적 요구가 폭발하며, 멕시코 정부는 대토지 소유자들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였고, 공동소유 방식의 '에히도(ejidos)' 제도를 만들어 원주민 공동체와 농촌 정착민들에게 땅을 분배했다.
그러나 80년대 외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경제 구조조정 과정이 시작되면서 에히도는 무너졌다. 신자유주의 경제 처방은 새로운 토지 분배 방식으로의 전환, 특히 시장 중심 분배 방식으로 변화를 요구한 것이다. 앞서 예를 든 멕시코에서는 1992년 헌법 개정으로 투자 자본에게 토지 매매가 허용되면서 기존 에히도 토지의 3분의 2가 사적 부문에 매매되었다.
가나
그러면 가나는? 아직 추장이 땅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하니, 토지의 배분이라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홈페이지에 한글로 된 좋은 자료가 있다.
가나의 토지제도는 전통적인 관습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체계에서는 토지가 단순한 물리적 재산을 넘어, 공동체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은 상징적인 공간으로 여겨진다. 전통적으로 가나 사회에서는 토지의 소유보다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사용과 관리가 중요한 요소였으며, 이는 토지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집단적으로 공유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관습적 토지제도 하에서 추장 등 전통 지도자들은 토지 관리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식민 통치 이전에도 추장들은 공동체의 토지 사용과 배분에 있어 중요한 결정권을 갖고 있었으나, 영국 식민 정부가 '추장제'를 도입하면서 그들의 권한은 법적 제도로 굳어졌다. 오늘날에도 가나 전체 토지의 약 80%가 전통 지도자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으며, 이들은 토지의 배분과 활용에 있어 기득권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의 식민 통치는 가나의 토지제도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식민 정부는 원래의 관습적 토지 사용 권한을 '소유' 개념으로 전환시켰다. 특히, 전통 지도자들에게 토지 관리 책임을 부여했던 '추장제'가 제도화되면서 기존의 공동체 중심 토지 관리 방식은 법적 소유권 체계와 충돌하게 되었고, 오늘날로 이어져 토지에 대한 접근과 분배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땅이 전통적인 부의 근원이므로 근대화 과정에서 (특히 피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에게) 토지개혁은 중요했던 것 같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농지개혁을 했다. 그 과정에서 불평등한 배분이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소작농이 자작농으로 변하여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었던 효과를 무시할 수도 없겠다. 남미의 경우 급격한 변화로 국민이 겪은 혼란이 컸으리라 짐작하게 한다. 한편 가나는 관습법에 따른 토지제도가 추장제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있어, 이것이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오늘날 성장과 불평등의 근원을 토지배분 문제에서 접근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런 주제의 책이 있을까?
참고자료
이영훈 <한국경제사 II> 10장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2141612740931
https://www.kiep.go.kr/board.es?mid=a10509042800&bid=0034&act=view&list_no=6420&nPage=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