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말하지 못하는 진심

엄마의 고백

by RAMJI

나는 8살, 5살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첫째에게 줄곧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괴로운 식사시간


예정일보다 일찍, 저체중아로 태어난 첫째는 아기 때부터 먹성이 없었다.

네 돌 영유아 건강검진에서 받아온 성적표, 몸무게 하위 3%라는 결과에 나는 결국 평정심을 잃었다.

소아과 의사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주고, 아이가 스스로 먹고 싶은 만큼만 먹게 하라고 했는데, 그 조언이 맞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행동으로 따르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아이 스스로 먹게 했지만, 점점 그만 먹겠다는 아이를 붙잡고 떠먹이는 날이 늘어갔다.

어느 날 식사 도중에 식탁에서 내려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아이는 엉엉 울며 나를 피했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동생에게 빼앗긴 엄마


계획에 없이 둘째가 찾아왔다. 첫째에게는 성공하지 못했던 모유수유를 둘째에게는 해주고 싶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온 날부터 나는 작은 방에서 둘째와 시간을 보내며 2~3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했다. 첫째는 안방에서 아빠와 함께 잤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밤, 11시가 넘도록 첫째는 자러 가질 않고 나에게 자꾸 책을 읽어달라고 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엄마랑 자고 싶어. 엉엉”

자신의 마음을 일주일 동안 입밖에 내지 않은 것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중에야 전문가의 영상을 찾아보니, 둘째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오히려 첫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첫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동생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동생을 쓰레기통에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서툴게 표현하는 첫째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누워있는 동생을 발로 밟는 시늉을 했다. 나는 혹여나 실수로라도 다칠까 봐 화들짝 놀라며 제지했다. 첫째는 그 행동을 반복했다. 타일러서는 말을 듣지 않아 야단을 치기도 했다. 그래도 마찬가지였다.

첫째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그렇게 굳혀갔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새로운 환경이라는 스트레스


1년 후 우리 가족은 해외에 잠시 거주하게 되었고, 알파벳도 모르던 첫째는 갑자기 학교, 그것도 영어를 쓰는 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던져졌다. 학교 측에서는 첫째를 1년 어린 동생들 반에 배정했다. 알파벳과 파닉스부터 익히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몇 달이 지나고 같은 반의 한국인 학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 첫째가 같은 반 동생을 때린다는 것이었다.

또래보다 체격이 작은 첫째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상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마음이 무너져서는 어느 때보다 크게 야단을 쳐버렸다. 아이의 속이 어떤지 살펴볼 마음은 먹지 못했다.


역시 엄마는 동생만 좋아해


한국에 돌아왔다.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첫째 입장에서 하루의 시작은 이러했다. 엄마 아빠가 자는 동생을 안고 셋이서 집을 나선다(둘째를 직장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었다). 자신만 혼자 남아 외할머니와 학교에 간다.

얼마 가지 않아 아이는 아침에 헤어지기 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녀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엄마는 동생만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게 됐다.


결단과 실천들


아이가 1학기를 마치기 전 남편은 해외 발령이 났고, 나는 휴직을 결정했다. 아이와의 관계도 문제였지만 그건 곧 내 자신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수는 없었다.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나는 그동안 자기 역사를 썼다. 감사일기를 쓰고, 테니스를 배우고, 몸이 개운하지 않을 때 혼자 요가를 하며,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특별히 자극을 준 것은 없다. 아, 소소한 세 가지는 있다.

첫째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테니스 레슨을 간다.

자기 전 그날의 감사한 일이 있으면 가족 모두 함께 나누자고 제안한다.
(첫째는 보통 감사한 일이 없다고 답한다)

마스킹 테이프에 짧은 메시지를 써서 도시락 뚜껑에 붙여 보내기 시작했다.
(어제의 메시지는 “경축 금요일!”)


마침내 찾아온 변화


첫째의 부정적인 태도와 신경질은 여전하다. 가끔씩 동생을 골려먹는 행동도 남아 있다.

사실 어젯밤에도 자기 전 동생 때문에 윗옷이 젖었다고 신경질을 냈다. 나는 차분하게 “갈아입자”, “구석에 혼자 불편하게 있지 말고 이제 자리에 눕자”고 말했다.

그런데 첫째가 처음으로 “엄마, 안아줘.” 이런다.

나는 얼른 “아이고 이리 와, 우리 아들” 말하며 품에 안긴 첫째를 꼭 안아주고 토닥여주었다.


이제 된 것 같다. 첫째의 “엄마 안아줘“ 한마디에, 나는 스스로 몰랐던 휴직의 중요한 목적이 달성되었음을 느낀다. 미숙한 엄마와 여기까지 함께 온 아들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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