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 cantata, BWV 147
'안녕하세요, 라모입니다.'라고 말하며 독자들과 만났다. 라모 매거진 안에는 나를 포함해 총 네 명의 멤버가 있는데, 공식 계정으로 올리는 포스팅은 쓰는 이가 매번 달랐기에 글 속 화자를 '라모'라 칭했다. 하지만 이젠 블로그, 인스타가 아닌 브런치다. 브런치에는 온전히 나만의 글을 올린다. 라모 클래식을 기획했고, 마음 맞는 사람들을 모았고, 매거진 1호에 에세이를 포함한 몇 가지 글을 썼던 나. 쑥스럽긴 하지만, 클래식과 라모를 사랑해주신 독자분들께 더 다가가려 내 이름 석자로 인사를 건네본다. '안녕하세요, 라모의 김가은입니다.'
나와 라모 독자들은 클래식으로 만났다. 우리는 클래식을 사랑하고, 그로 느낀 위로와 감동을 이야기하며, 클래식이 있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우리니까, 나에 대한 첫 소개도 클래식으로 하고 싶었다. 머릿속에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후로 계속 고민했다. 나를 표현할 그 한 문장을 찾아 헤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머리맡에서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씩 웃었다. 모닝 알람 음악인 바흐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흐 음악은 화려하거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기보다는 규칙적인 절제미를 갖고 있다. 특히 피아노로 편곡된 이 칸타타 곡은 심플한 단일음이 상승하고 하강할 때마다 만들어내는 잔잔한 울림이 돋보인다. 그렇기에 알람 음악으로 추천하기엔 무리가 있다. 흔히 알람 음악이라 하면 잠든 사람을 무조건 잘 깨울 수 있는 곡으로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엔 그런 생각에 동의해, 스트라빈스키의 'Petrushka: The Shrove-tide Fair'을 선택했다. 곡 도입의 명랑한 플룻 소리가 적막한 공기 속을 헤치고 뻗어 나가, 정적인 아침을 깨울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며칠을 그렇게 일어나 보니, 그 음악은 나의 아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피터팬에 나오는 악어처럼 몸속에 시계 하나를 삼켜 놓기라도 한 듯, 한 번 기상 시간이 정해지면 알람이 없어도 그 시간에 눈을 뜨는 사람이었다. 중요한 사람과의 약속이 있거나 큰 시험을 치러야 하는 날, 7시 알람을 맞춰놓으면 정확히 6시 59분에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온 세상을 깨울 정도의 위력을 가진 알람 음악은 필요 없었다. 바흐면 되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한쪽 눈을 부스스 뜬 채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 할 일을 되뇌어 볼 때에도, 어쩌다 잠에 취해 알람을 들으며 깰 때에도 딱 알맞았다.
여러 시간 중 그 어느 때보다도 아침을 좋아한다. 새 마음을 먹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오늘'이라는 이름 하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거나 실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아침에 바흐의 올곧으며 겸손한 선율은 썩 잘 어울린다. 매번 명확한 텍스트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오늘을 다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함', '사랑', '화평'과 같은 것을 갈구하는 두루뭉술한 마음으로 그 음악을 듣는다.
내 이름으로 인사를 건네며, 이 글과 같은 듯 다른 방식으로 내 얘기를 계속 할 것이다. 내가 듣는 일상의 음악으로, 가치관이 엿보이는 내용으로, 성향과 취향을 나타내는 문체로 자연스레 파악되길 원한다. 그리고 더욱 가까워져, 바흐의 선율처럼 깊이 있는 평안을 서로 나눌 수 있길 바란다.
Bach cantata, BWV 147: X.Jesu, Joy of Man's Desiring (Arr. for piano by Myra H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