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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은 Jul 16. 2020

우리는 헤어져있지만

W. Peterson-Berger : Sommarsang

아빠는 보거스를 닮았다. 어찌 보면 스머프 같기도, 신동엽 같기도 하고. 엄마는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연예인 같다고 할 정도로 미인이다. 그런 아빠 엄마에게서 두 딸이 태어났는데, 나는 그중 첫째고 여자 보거스다. 내 동생은 엄마 닮았단 소리를 나보단 훨씬 많이 듣긴 하지만 판박이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내 눈엔 그 나름대로 정말 예쁘다. 물론 그 예쁜 얼굴을 막 쓸 때가 많아 사람들은 내 동생이 얼마나 예쁜지 잘 모르는 듯하지만.



생긴 것뿐만이 아니라 우린 성격도 완전히 달라서 어렸을 때부터 어마어마하게 싸웠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해서 그걸 이겨내기 위해 과장된 행동을 일삼으며 컸지만, 동생은 어른들에게 만화 '짱구는 못 말려'에서 짱구가 쓰는 엉뚱하고도 무례한 대사를 해맑게 내뱉을 정도로 솔직하고 털털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내전이 일어나면서도, 집순이 기질이 뚜렷했던 나에게 동생은 가장 좋은 친구였다. 우린 아빠가 녹화해준 〈사운드 오브 뮤직〉을 수백 번 보았고, 방바닥에 엎드려 온갖 것들을 그렸고,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같은 추억을 공유했다.



동생과 나



그러나 여느 가정이 그렇듯, 우리 또한 각자의 시간을 갖게 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세 살 터울인 우리는 내가 고등학생일 땐 나의 수험생 생활 때문에, 대학생일 땐 동생의 예고 생활 때문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심지어 미대에 진학한 동생은 학교가 집에서 애매하게 멀어 잠시 자취도 했다. 부모님은 집에 방이 세 개 있어도 각자의 방을 주지 않고, 공부방과 침대방으로 나누어 함께 쓰게 하셨던 터라 난생처음 겪는 동생의 부재는 큰 충격이었다.



웃긴 건, 잠깐의 부재가 아닌 긴 부재를 만든 건 결국 내가 먼저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며 먼저 집을 나갔다. 그래도 가까이 사니까 원할 때면 언제든 동생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년쯤 지났을 무렵, 동생은 돌연 독일 유학을 선언했다. 부모님과 이미 다 상의하고 결정한 후에 알리는 그 소식은 나에겐 통보나 다름이 없었다. 까불거리긴 해도 신중한 아이니까, 그 선택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뒤따랐을지 알기에 차마 붙잡질 못했다. 아쉬움과 섭섭함으로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가 마음속을 나뒹굴며 제멋대로 풀렸다, 엉켰다 했다.



내 동생


그 해 가을, 우리는 함께 밀양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동생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것이 출국 전 우리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함께 걷던 위양못에서 Wilhelm Peterson-Berger이라는 스웨덴 작곡가의 Frosoblomster, Book 3: No.2. Sommarsang이 흐르는 이어폰 한쪽을 동생에게 건넸다. 평소 그 곡을 들을 때면 푸른 잔디 위에서 학사모를 쓴 학생들이 졸업하는 풍경을 떠올리곤 했다. 왠지 모르게 가슴 먹먹한 주선율은 달리 들으면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누군가의 씩씩함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했는데, 김가네 막내 생활을 졸업하는 동생에게 그 곡으로 무언가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날 기차에서 라모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나도 클래식 좋아해."라며 무엇이든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후 독일에 가고 나서도 그 약속을 지켰다. 라모의 인스타그램, 브런치, 매거진 1호에는 동생이 찍은 필름 사진이 가득하다. 매거진, 손편지에 있는 일러스트도 모두 동생의 것이다. 우리는 이제 너무나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고, 살아가는 시간조차도 다르지만 '라모'라는 공간에 우리의 새로운 추억을 써나간다.



이번 가을이 오면 1년 전 함께 걷던 그 길을 기억하며, 그날의 우리를 따라 걷고 싶다.




Wilhelm Peterson-Berger : Frosoblomster, Book 3: No.2. Sommarsang

https://youtu.be/fmSmQVmRP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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