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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use Oct 21. 2023

한 템포 쉬는 연습

그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입이 화근’이라는 말이 있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다’는 격언도 있다. 사람의 신체에서 작은 부위를 담당하고 있지만 어쩌면 남들을 가장 아프게 하는 부위가 말을 내뱉는 입이지 아닐까.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에 대한 명언과 사자성어가 가장 많은 지분율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나도 입이 늘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나는 뇌가 투명한 구석이 있어서 때때로 분위기 파악을 잘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하지 말아야 할 얘기를 꺼낸다거나 눈치부족으로 속에 있는 말을 쏟아낼 때가 더러 있었다. 물론 타인을 공격하려는 못된 심보로 말을 한다기보다는 뭔가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정직해지지 않는 느낌이어서 그렇게 행동했다.


그래서 때로는 ‘직설적이다’, ‘돌직구다’, ‘시니컬하다’라는 뾰족한 문장의 단어들을 종종 들어왔다. 윤활유처럼 부드럽고 융화된 사람이 되는 것이 내가 바라는 궁극적인 자아상이지만, 부족한 입술 때문에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기까지는 역부족이다.


‘내 마음에 악의가 없으면 됐지’, ‘의도가 선한 거라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내뱉었던 말들이 타인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으며, 더 크게는 그 사람에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호의로 내뱉은 말일지라도 타인에게 아픔이 되었다면, 결국 그 말은 어떻게든 함구해야 되는 것이었다.


예전에 아는 동생에게 “00 이는 엄마 닮았으면 더 예뻤을 텐데~”라고 짓궂은 장난을 친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때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대화를 넘어갔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동생의 엄마는 친모가 아닌 새엄마였다는 것을.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살짝의 충격과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밀려왔다. 내가 그냥 던진 말이 그 사람에게 엄청난 상처가 되었겠구나, 그 동생은 나에게 어떠한 내색조차 하지 않고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그 순간 마음이 얼마나 안 좋았을까.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나의 말이 그 동생에게 아픔이 되었을 거라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무심결에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처럼, 나의 짧은 생각과 말들이 타인에게 아픔이 되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앞으로는 침묵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침묵의 기술>이라는 책에서는 ‘침묵보다 나은 할 말이 있을 때에만 입을 열라’는 말이 있다. 나도 앞으로 말을 하기 전에 먼저 ‘그 말이 침묵보다 나은 말인가?’를 몇 번을 되뇌고 곱씹으면서 말을 할 것이다.


한 템포 먼저 쉬고 말하는 연습부터 기르자. 불편한 궁금증은 그냥 불편한 대로 내버려 두자. 그럴만한 데에는 그에게도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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