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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use Oct 14. 2023

제발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

작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하더니,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전쟁을 선포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겁이 무지 많았다. 초딩 때는 언니랑 영화 <미이라>를 보다가 무서워서 할머니 품에 안겨 성경책을 읽어달라고 했고,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는 미신을 믿어 그 색깔은 필통에 넣고 다니지 않았다. 그만큼 죽음은 내게 있어 아직까지 크나큰 공포이다.


지금도 남의 나라 전쟁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면 가슴이 쿵쾅쿵쾅 하고 심장이 떨려온다. 작게 피어오른 불씨가 삽시간에 퍼져나가 산불이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듯이, 바깥 나라의 싸움 또한 여간 무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엄연히 따지고 보면 휴전 국가이다. 전쟁이 종식된 게 아니라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오펜하이머>라는 영화를 보며 원자폭탄, 일명 핵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한번 더 체감하게 되었다. 그 대량학살무기는 아직까지 세계사에서 가장 큰 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인류가 최후의 순간까지도 보류해야 할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점점 잊혀가는 내 마음이다. 작년 러-우 전쟁이 시작됐을 때 나는 저녁 한 끼를 맛있게 먹는 것도 죄스러웠다. 반대편에서는 전쟁으로 목숨을 잃어가는데 나는 평화롭게 맛집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이 꽤나 이질적이고 거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근데 정말 사람은 망각과 적응의 동물이라고. 매번 전쟁뉴스와 기사를 챙겨보던 나도 어느새 관심밖의 일이 되어서 감흥이 없어진 것이다.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는 게 틀린 말 하나 없는 것 같다.




오늘도 지구촌에서는 재앙과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을 게 아니라 최소한 마음과 행동만큼이라도 깊은 애도를 가지고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할 필요는 있을 거란 말이다. 전쟁 앞에서 속수무책이고 아무런 힘이 없는 국민이라지만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감각만큼은 곤두세워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집 앞 아트박스에서는 핼러윈데이라고 코스튬 장식품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불금의 강남역은 클럽을 찾은 젊은이들로 인해 거리가 빽빽하다. 우리는 제 몫을 다해 현재를 살아가야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생사가 엇갈려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생각하자니 자신의 향락에 도취되어 살고 있는 삶이 과연 옳은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오지랖이 넓은 애늙은이라서 그런가 보다.


17세기 철학가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지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사과폰을 들어 인증샷을 찍고 있지 않을까?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한 광경이다.


한때 온라인 커뮤니티에 돌아다녔던 ‘지구 멸망 2초 전’ 사진


그날에 부디 신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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