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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use Oct 20. 2023

나는 왜 이리 둔할까

육신아 미안해..


1. 몇 주 전, 전신거울 앞에서 머리를 묶으려고 들어 올린 팔에서 시퍼렇게 든 멍을 보고 깜짝 놀랐다. 데이트 폭력을 당한 여인마냥 달덩이만 한 보랏빛 멍이 팔뚝에 핀 것이다. 통증을 딱히 못 느끼고 있어서 몰랐다가 거울에 반사된 팔을 보고 나서야 시퍼런 멍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2. 지난주에는 아침에 화장을 하려고 얼굴을 만지다가 모르고 눈을 쳐서 각막이 찢어졌다.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눈물이 막 흘러서 예고 없던 휴가를 2개나 써버렸다.

3. 그러더니 오늘은 무릎에 멍이 났다. 아니지, 오늘 발견한 것이니 실제 언제 멍이 났는지도 모른다. 아마 며칠 전 어딘가에 부딪혀서 타박상을 입었을 것이다.


정말.. 도대체가 어디서 자꾸만 부딪히는 걸까?


나는 (내 몸에) 상당히 둔하고 행동도 무딘 편이다. 그래서 3년 전에 십자인대가 파열된 것도 그것이 파열인 줄 모르고 살다가 3개월 후에 MRI를 찍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어릴 때는 놀다가 다쳐서 꿰맨 칼자국이 얼굴에 두 군데나 남아있다. 인간관계나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는 말초신경이 매우 예민하여 상대방의 기분이나 미세한 태도 변화에도 금방 알아차리는 편인데, 아마 그곳에 기능이 몰빵 돼서일까? 그 외 나머지 것들에는 감각기능이 거의 제로 수준이다.


신체 못지않게 나의 정신 상태에도 꽤 우둔한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이게 스트레스인지를 모르고 살다가 얼굴에 대왕뾰루지가 피고 나서야 ‘아 내가 요즘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를 깨닫게 된다. 전에 다녔던 IT회사에서도 성추행을 실컷 당해놓고서 그것이 성추행인지도 모르고 친구들에게 얘기를 하다가 왜 그걸 멀쩡히 참고 있었냐며 잔소리를 한 사발 들었다. 손깍지에, 머리 넘김에, 요사스러운 멘트를 흘리는 그 이사를 옆에 두고서도 ‘설마 가정이 있는 사람이 불순한 마음으로 그랬을까’ 하여 크게 의심하지 못했다.


결국 둔한 성격이 내 몸을 다치게 하고, 불상사 한 일을 만들 수도 있으며, 주변 사람들을 피로하게까지 했다. 신체에 무슨 변화가 일어났는지도 모를 만큼 나는 우둔한 사람이니 이렇게 내 몸은 자꾸 멍들고 부딪히며 상할 대로 상해졌다. ‘선천성 무통각증’ 환자처럼 몸에 타박상을 입고서도 통증을 모르는 나는, 어쩌면 둔하다기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내 자신에게 신경을 안 쓰고 사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인들은 무딘 나를 보면서 ‘저래서 누가 데려갈꼬’라고 농담 식의 어조로 놀리는데, 그런 말을 들어야 할 만큼 나의 ‘둔함’이 타인에게 짐이 되는 일인가 싶어서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그럼 그 우둔함을 고치기 위해서는 반대로 예민해져야 한다는 소리인데, 아침에 스킨로션도 겨우 바르는 내가 과연 신경을 곤두세우고 내 몸을 관리하며 잘 챙길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몸도 맘도 성할 곳이 없는 나는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울 뿐이다.




ps. 주인 잘못 만난 육신아, 정말 미안하다..

고데기에 발 잘못 넣어서 화상 입었던 작년의 일도

사과할게..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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