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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use Oct 27. 2023

낙성대역 6번 출구

이제 안녕, 나는 떠날 것이다

넘어지면 코 닿을 정도로 초역세권이었던 우리 집을 이사 가야겠다고 결심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층간&측간소음이 너무 심하다.

둘째, 화장실에서 이유 모를 냄새들이 올라온다.

셋째, 집 앞에 있는 경비 아저씨의 침 뱉는 소리와 주차 때문에 싸우는 소리를 매일 듣고 살아야 한다.

넷째, 대로변에 위치하여 자동차 주행 소리나 신호등 바뀌는 소리 등 온갖 잡음들이 집안으로 유입된다.

다섯째, 이곳에서 살기에는 짐이 너무 많아졌다.


이런 이유들이 켜켜이 쌓여왔었지만 결정적으로 오늘 무조건 이사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이른 새벽 4시 30분에도 야다의 ‘이미 슬픈 사랑’을 떼창하는 청춘들의 고성방가를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집 앞에 바로 노래방이 있는데 거기서 나온 무리들이 흥이 꺼지지 않아 노래를 마저 불러대는 건지, 아니면 술에 거나하게 취한 취객들이 도로에서 버스킹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2년 넘게 이곳에서 원치 않는 asmr을 들으며 귀가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나의 도태된 감각 중에서 유독 청각에만 예민하게 발달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집 주변의 환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에는 절대 이사를 가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지만 결국 시즌을 피하지 못하고 내년 2월쯤에 이사를 갈 생각이다. 역세권이라는 지리적 입지의 장점을 포기하고 다른 데로 이사를 가고 싶을 정도로 피해를 겪어본 나는 체리몰딩이 가득한 구옥도 괜찮으니 집만 넓고 조용하다면 어디든 오케이다. 그리고 요즘 드는 생각은 구옥이 주는 앤티크함이 마치 90년대의 한국감성을 피어오르게 해주는 것 같아서 오히려 좋다.



왠지 그곳에서 펜을 짚고 있노라면, 마치 <미술관 옆 동물원>의 춘희가 되어 집에서도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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