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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use Nov 14. 2023

광화문에서

가을을 떠나보내기 위한 이별여행

떠나가는 가을을 붙잡으려 직장인에게는 황금 같은 소중한 월차를 내고 아는 동생과 함께 덕수궁 투어를 나섰다. 최근 가을비가 태풍과 함께 동반하여 낙엽이 다 우수수 떨어지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직 단풍 잎새들은 나뭇가지에 붙어있었다.




서울토박이라 이 도시는 웬만하면 내게 감흥이 없는데 유일하게 내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하는 동네, 바로 광화문 일대. 왠지 이곳에 오면 <무한도전>에서 무도 멤버들이 추격전을 하고 있거나 외국인들이 직접 셀카봉을 들며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촬영하는 장면을 마주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들의 촬영지인지라 더 정감이 가지만, 한편 다른 곳에서는 추모와 시위, 집회 등 갖가지 사회문제로 발생한 이슈들에 저항하기 위한 투쟁도 볼 수 있는 양면성이 깃들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뭐든 억지로 붙잡으려 하면 떠나가듯이, 결국 부리나케 도망가는 가을을 제대로 보내주고자 우리는 올해의 마지막 가을 이별여행을 나섰다. 먼저는 광화문 교보문고점에 가서 신년을 맞이하기 위한 의식으로 동생은 2024년 다이어리를 구입하고 덤으로 팬시도 몇 개 샀다. 연말이 다가오면 늘 다이어리를 사곤 하는데, 마치 새 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학용품을 사는 학생처럼 다이어리를 살 땐 괜스레 기분이 설렌다.





쇼핑을 마치고 꺼진 배를 다독이려 마라탕을 흡입한 다음에 바로 덕수궁으로 향했다. 티켓을 발권하고 들어간 이곳의 풍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한옥의 미가 담겨있는 기와지붕과 돌로 만든 석조전은 마치 내가 조선시대의 궁녀가 되어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을 주었다. 이 공간 안에서도 사람들이 유독 밀집되어 있는 곳들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SNS상에서 사진 찍으면 잘 나오는 곳으로 유명한 포토존이었다.


특히 고대 그리스 신전 같은 분위기의 석조전 안에서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커플이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계속해서 여자친구의 인생샷을 찍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 걸음 자리를 옮기더니 남자가 하는 말이, “여기인 것 같은데?” ... 마치 수맥탐지기로 명당을 찾듯, 여자친구의 인생샷을 건져내기 위해 포토스팟을 찾아내는 그의 열정에 나와 동생은 감탄을 하며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하지만 남친을 사진셔틀로 만드는 것 같은 그녀가 조금은 얄궂었다.)




서울시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된 <정동길>


덕수궁 관람을 마치고 정동길을 걸으며 사전에 미리 찾아놓은 카페로 향했다. 정동거리의 일대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근현대사의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배재학당, 정동극장, 이화학당 등 교과서에서만 보던 반가운 이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은 변하지만 건물들은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서있는다. 이들은 늙지 않는 뱀파이어처럼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며 혼자서만 영원히 살 것처럼 존재한다.


카페에 도착하여 녹초가 된 우리들은 서로의 저질체력을 저주하며 바닐라라떼를 수혈하고 집 나간 기력을 회복했다. 덕수궁에서 찍은 사진들을 구경하고, 교보문고에서 구입한 문구들을 언박싱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 후 해가 저물기 전에 곧장 집으로 향했다.





이로써 올해 나는 가을을 제대로 만끽했다. 친구와, 엄마와, 아는 동생과 함께. 벌써 3번이나 가을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제는 가을을 미련 없이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다가오는 겨울은 또 겨울만의 감성과 추억이 있으니 겨울은 겨울 나름대로 또 좋다. 함박눈이 내리는 어느 추운 겨울날, 카페에서 핫초코라떼를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설레어진다.



잘 가 가을아, 그동안 고마웠어

그리고 어서 와, 겨울아 :)



그가 인생샷을 찍기 위해 수맥을 찾던 석조전 앞에서 나도 셀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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