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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May 02. 2021

소풍가기 전 날이 가장 설레는 법

21.4월 강원도 여행기 part.1

 오랜만에 만난 언니, 오늘 처음 만난 언니, 알고 지낸지 오래지 않은 친구 요상한 네 사람이 함께한 강원도 여행. 다양한 인생들과 함께 다채로운 삶을 경험한 여행. 여섯개의 공간과 그곳의 사람들. 여운이 뚝뚝 떨어지는 이 여행기를 적지 않은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직무유기일 것 같아 글을 적는다.


첫째 날

 꼬박 한 계절을 준비한 이연언니의 공간은 언니를 꼭 닮았다. 레벨업 한 당근케이크와 공들인 플레이팅, '당돌 발랄'이라고 적혀있는 것 같다는 언니의 뒷모습. 오랜만에 바에 있는 언니를 보고있자니, 프릳츠에서 함께 일할 때 모든 손님을 지인 대하듯 환대하던 언니의 다정함이 향수가 되어 내 코 끝을 찔렀다. '즐거워서 하는 사람'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언니다운 이 공간과 김이연이라는 사람이 몹시 사랑스러웠다. 언니는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를 한 스푼 더하고, 조건 없이 기쁜 삶을 삼킬 수 있게 해주는 향기로운 삶을 언니는 여전히 살고있다. 언니가 없는 곳에서도 나는 자주 언니를 꺼내본다. '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언니는 어떻게 했었지?' 이런 고민 후에 곧장 '나는 어떻게 하면될까?' 긍정적인 진보를 하게 만든다. 실로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언니가 이연스럽게 살며 영감의 원천이 되듯 나 또한 아람스러움으로 주변을 잔잔히 물들이는 인생이 되기로 다짐한다. 이연 약발이 떨어질 때쯤 다시 찾아가겠지만 그 텀을 서서히 늘리고 결국엔 나도 언니에게 약효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우리는 옆집 (타칭) 타샤 할머니 정원도 방문하는 행운을 얻었다. 나이가 들어도 정원을 가꾸듯 자기 자신을 가꾸는 할머니 모습에 20분 남짓한 짧은 만남 후에도 우리는 줄곧 할머니와 그녀의 정원을 이야기했다. 억지부리지 않는 존경심은 이렇게 피어오른다. 먹지 못하는 식물을 기르는 것에 썩 관심이 있지 않았는데, 정원에서 툭 따다 유리병에 쏙 꽂는 계절적인 작업도 꽤나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써니사이드업의 감각적인 공간. 동남아로 여행 온 듯 한 인테리어와 가구, 선별된 LP들과 폴라로이드를 통해 '기억'을 제공하는 특별한 서비스. 이솝으로 범벅인 어메너티, 부족함 없는 식기들과 제공되는 편의도구들도 모두 트랜디로 힘이 빡 들어가 있었다. '스테이'를 한다면 이 정도는 돼야한다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훌륭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편안했지만 불편한 대화들을 주고받았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화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을 나누는 일이 가장 기쁜 우리들이니까. 졸려서 충혈된 눈을 하고서도 잠들기 아까워 부비적 거렸던 공간과 대화. 소풍 같았던 첫 날이 저물었다.




둘째 날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들. 전날 잠들기 전 알람을 맞추며, 모두가 일어나기 전 아침식사를 차려 놓아야지, 했던 다짐이 민망하게도 나는 꼴찌로 겨우 정신을 일으켰고 간단히 요플레만 먹는 이들 사이에서 꿋꿋히 계란후라이와 남겨둔 새우를 구워 먹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식탁을 차리는 일에 나는 설렌다. 내 몫이 없어도 심술이 나지 않는 유일한 식탁이다. ...엄마 마음을 닮았나보다, 라고 처음 생각 해본다.

 

 르꼬따쥬,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약간 높은 대지에 200년된 고택을 개조한 곳. 호스트 자매는 리모델링한 고택을 매우 적절히 활용하는 세련된 도시사람이었다. 그 조합이 나에겐, 뭔가, 언발란스했다. 셀렉샵 처럼 화장품이나 유기농 잼, 디퓨저 등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는데 시간대별로 예약을 받아 기성 음료를 서브하고 공간만 제공하는 이들의 사업방식이 나는 썩 매력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스치듯 지나간터라 판단의 비약 일 가능성도 있겠다만 공간을 운영하는 호스트에게 기쁨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제 시간에 게스트가 도착해 최대한 음료만 빨리 제공하고 제 볼일 보러 자리를 뜨고싶어하는 상업적 이용만이 존재하는 듯 보였다. 아무튼 공간은 잘 꾸며놓았으나 이전 세대의 '애정'과 '삶 그 자체'는 철거되고 자본과 효율로 세워진 빈 껍데기 같았다. 이용시간 한 시간 반이 지난 후에는 전혀 아쉬울 게 없는 그런 차가운 공간이라고, 미안하지만 악의가 있는 악담이 아니라 슬픔이 묻어있는 아쉬움의 토로다. 써니사이드업이나 르꼬따주는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공간, 방문자의 삶에 일침을 가하는 생명력있는 공간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어서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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