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커피지 뭐>, 아티스틱커피듀오 메쉬커피
<커피가 커피지 뭐> 라는 제목은 분명 반어법 일것이다. 커피 하는 사람 중에 커피를 단순한 커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 될까? 가방에 넣은 이 책은 무척이나 가벼운데 두 손에 들려 펼쳐지는 순간 시멘트 반죽을 콸콸 쏟아부은 드럼통이 내 마음 호숫가에 던져진 것 처럼 푸웅덩 가라앉는다. 나는 어쩌다 커피를 시작하게 되었나? 부터 시작해, 언제부터 커피를 좋아했지? 나의 커피는 얼마만큼 성장했나, 어떤 커피를 하고싶은가, 커피 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싶은가 등등. 3년 4개월 커피인생 중 내가 겪은 경험과 고민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고 이 허우적거림은 나만하는 헛짓이 아니었다는 안도감도 들어 위로가 됐다. 그러나 동시에 고구마 100개를 먹은 답답함도 느껴졌다. 인생은 각자의 것이므로 정답이 애당초 존재하진 않지만 나보다 먼저 간, 제법 이름 난 업계 선배도 사이다 같은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구나, 싶어서. 지금 내가 처한 상황과 포지션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하는거구나. 근데 틀이 없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하네.
아주 공감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다 적진 못하겠지만.
짜장면과 짬뽕 중 하나를 고르기가 세상이 멸망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만큼 심오하게 여겨졌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혹여나 잘못된 선택으로 상처를 받을까 두려웠다. 그렇게 혼자 고민을 떠안고 외롭게 고립되어 갈 무렵, 잠깐 비를 피하는 도피처로 커피를 생각했지만 더 이상 도망할 곳이 없었다. 남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커피를 하는 특이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커피를 좋아하고 궁금해 했지만, 죽을 때까지 이걸로 먹고살 용기는 없었다. 어쩌면 속으로 바리스타보다 더 멋있는 삶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라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메쉬 사장님은 낭떠러지에서 겨우 붙잡은 줄을 놓기로 결정하셨다고 했다. 커피를 평생 직업으로 삼아보자고. 그렇게 세상과 부딪혀 보기로. 그것이 사장님의 선택이었고 현재 그의 삶이 그 선택의 결과이다. 인생에는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지금의 사장님과 메쉬는 진심으로 멋있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커피로 먹고살기로 결심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부모님과 친구들은 내가 잠깐 경험만 하고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것 같다. 지금처럼 커피 전문가를 목표로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손으로 직접 땀 흘려 버는 일이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바리스타는 대부분이 자기만족으로 커피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난다 긴다 하는 F&B 전문가들도 커피를 어려워한다. 커피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은 더 어려워한다. 바리스타는 비슷한 업종의 종사자들과 어딘가 모르게 결이 다르다. 마치 고양이 같은 존재랄까. '여기 미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적응자, 혁명가, 문제아들, 네모난 구멍에 끼워진 동그란 마개처럼 이 사회에 맞지 않는 사람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을 이야기했던 애플의 'Think Different' 광고에 꼭 들어맞는 사람들이다. 애당초 커피가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부질없는 부와 명예를 좇으며 스타벅스처럼 성공하길 바라는 부류도 있지만 아무리 커피가 맛있어도 동네에 숨어 소소하게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또라이 이고 싶었다. 노홍철과 박나래를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알아주는 범생이에 애늙은이가 나의 본투비 캐릭터였다. 내 안에 내재된 똘끼와 자유를 향한 열망은 학교와 (율법주의) 종교라는 굴레를 벗어난 후 꽃피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커피'는 있어도 '바리스타'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 아니면 '너랑 잘 어울린다' 였다. 너희가 나를 잘못 본걸까 내가 나를 몰랐던 걸까? 뭐가 됐던 부적응자, 혁명가, 문제아들, 네모난 구멍에 끼워진 동그란 마개처럼 이 사회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내 맘에 꼭 든다. 나도 내가 이렇게나 오래 커피를 할 줄 몰랐거니와 지금도 매일같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기분이지만 동네에 숨어 소소하게 지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은 맞는 듯 싶다. 그럼 이미 커피인의 자격 조건에는 맞다는 말이 되나?
우리에게 '성공'과 '성취'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단지 돈과 명예만이 바리스타의 목표는 아닌 것 같다.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커피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그의 목표이자 성취고 성공이라면 그는 커피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나와 내 생각을 커피로 타인에게 소개하고 표현하는 방식. 나는 커피를 예술로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애당초 그럴 주장을 할 수 있을만큼 커피에 고민을 담지 않았다는 게 사실에 더 가깝다. 나는 최선을 운운할 수 없기에 불평할 수도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걸 '잘못'이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커피를 향한 나의 끌림만큼은 다가갔으니까. 더 잘하고 싶고 알고 싶은데 노력 없이 열매만 바란 건 아니니까. 그래도 이 책을 읽고나니 한번쯤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커피는 무얼까? 어떤 마음과 가치를 담아야할까?
기술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이후로 기술이 아니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답은 쉽지 않았다. 이럴 땐 생각만 하지 말고 몸으로 부딪혀야 한다. 그래서 커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본 후 커피가 아닌 다른 것을 해 보기로 했다.
끈기, 인내, 초월, 해탈, 다했다, 다해봤다 이런 단어 앞에서 나는 고개를 조아릴 뿐. 요즘 것(;)들은 다소 다른 사고방식으로 삶을 대한다지만 여전히 나는 이런 숭고한 단어들이 날 설명해주길 원한다. 커피에 더 깊게 물들기 전에 빠져나오고 싶었을 때도 '내가 진짜 다 해본 게 맞나? 나랑 역시 안맞는 거였어 라고 단정짓기엔 해본 게 없는걸' 이라며 주저주저 한 지 3년 하고도 4개월이 된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 가봐야 내려놓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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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커피라는 미지와 배고픔의 세계를 앞서 간 개척자. 1세대 바리스타, 챔피언 타이틀을 얻은 바리스타들, 스페셜티 시장을 주도하는 업계 유명인사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수많은 이름없는 바리스타들. 상대적으로 허들이 낮은 시장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닳을 문지방마저 없는 배알없는 세계. 그 세계에 속해있는 나는 생각한다. 마음의 소리를 쫓아 소신있는 선택을 내린 개척자들에게는 고유의 단단함과 아우라가 있다고. 시기와 맞아떨어진 그들은 1세대라 칭함받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내가 겁도 없이 커피의 문을 두드렸던 때로 돌아가보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의 무식은 섭씨 37.5도의 열정이 되어 내 안에서 끌어올랐다. 이렇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불친절한 친구임을 알고나서는 커피를 잘한다는 문장에 의미를 두지 않게됐다. 어쩌면 그래서 내 노력이 아깝게 느껴졌나보다. 나는 이렇게 포기도 빠르다. 그럼 나는 지금 커피에 무얼 담고 있는가?
나는 커피인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언제까지 놀고싶을까? 지금도 마냥 편하고 즐겁게 놀고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때 나는 바리스타였다' 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직업란에 바리스타를 적기까지 돌다리를 다섯 번은 두드려야하는 나에게 커피는 단순히 커피라고 부를 수 없는 복잡한 존재다. 커피가 커피지 뭐,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오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커피를 마시고싶게 만드는 책이다. 읽는 내내 다음번엔 여기를 가서 이 커피를 마셔야지 라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그 마음 하나 남는다면 이책의 역할은 다 한 것이다.
커피는 역시, 후, 미묘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