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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Nov 10. 2020

불편을 유희하다

불편에 대한 두 가지 단편

| 이어폰이 고장났다. 

소비에 있어서는 좀체 부지런떨지 못하는 나는 당근마켓에 이어폰, 헤드폰, 헤드셋을 알림 키워드로 설정해놓고 2주를 보냈다. 거의 보름만에 쉬는 날. 원격 근무가 남아있지만 모처럼 쉬는 날 자전거를 끌고 나갈 구실을 찾았다. 퇴사한 동료 제빵사가 호수공원 근처에 베이커리를 오픈한 것. BGM 없이 왕복 1시간 반 가량을 달리면 분명 심심할테지. 이리 생각하고 페달을 밟은지 10분, 오후 1시 볕에 비치는 붉은 잎사귀들이 서걱거린다. 차도를 벗어나 산책로로 진입한 자전거는 새들이 복작거리는 소리 속을 운전한다. 분주했던 지난 시간들이 고요 속에서 펼쳐진다. 해야했지만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기도가 찬양으로, 내 마음 속에서 공기 중으로 뿜어져나온다. 아, 불편하다고 생각했는데. 행복하다. 정해진 BGM이 아니라 내가 발견하고 창조한 BGM이라서. 불편함은 그냥 낯섦일지도 모르겠다. 낯섦은 그 자체로 여행이다. 오늘도 좋-은 여행이었다.




| 환경을 말할 때 내가 하는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2008년 열공모드 고딩시절. 늦은 시간 과외를 마치고 귀가해 습관적으로 TV를 켰다. 망망대해 빙하 조각에 외로이 서있는 하얀 곰. 소녀 감성에, 늦은 밤이었고, 한창 센서티브할 시기에 그 장면은 눈물과 함께 내 마음에 쿵 하고 떨어졌다. 빙하 조각이 둥둥 떠내려와 내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것 같았다. 그후부터 지구환경에 대한 더 많은 자극과 정보들은 내 라이프스타일로 치환됐고 강력한 동기부여가 됐다. 불편을 유희하는 동기부여! 어느새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불편함의 노하우가 가득찼다. 불편에 숙련되었고 어느새 나는 즐기고 있었다! 나의 불편이 12년 전 북극곰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다.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여전히 당장의 갈증해소가 플라스틱 사용을 단호하게 막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저렴’한 가격은 미래의 비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아니, 미래라고 생각했던 비용이 현재 우리에게 매겨졌다. 우리가 흥청망청 쌓아온 부채에 대해 혹독한 독촉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떻게 갚아나갈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럼에도 꾸준히 불편을 고집한 덕분에(?) 지인들이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나를 떠올리며 낭비를 덜하게 된단다. 바로 옆에서 내 눈치를 보는 그를 발견했을 땐 인간적으로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불편을 즐겨보자. 간결하게 사는 삶이 새로운 차원의, 어쩌면 더 큰 즐거움을 줄것이다. 내가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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