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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Nov 23. 2020

원더풀 라이프

영원히 박제될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시오

 <원더풀 라이프>, 1999년작 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가슴 뭉클', '잔잔한 분위기' 였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새로운 경험은 일부러 찾아 즐기는 편이지만 낯선 영화나 드라마에는 선뜻 마음을 열지 않는 나인데 오늘은 좀 더 용기를 낸 날이었지 싶다.


죽음 이후 일주일 동안만 머무는 사후 어느 세계인가를 배경으로, 각자가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선택해 그 때의 기억과 감정만을 갖고 영원히 살아야한다는 설정의 영화. 몇 년을 살아 도착했든 모든 고인들은 자신의 삶에서 오직 단 한 순간만을 꼽아야하기에 각자에게 3일의 말미가 주어진다. 더군다나 평생동안 지니고 살아야하는 기억이니 더욱 신중해진다. 배경 설정에 비해 풀어가는 방식이나 분위기는 극도로 고요하고 잔잔한 이 영화에도 의외의 반전과 절정이 있다. 허나 그 반전과 교훈보다 22명의 고인들이 선택한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나열이 훨씬 의미있게 느껴졌다.


엄마 무릎에 누워 귀를 맡기던 순간의 냄새와 촉감,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규칙적인 소음으로 기억되는 통학 전차 안에서의 순간, 오빠가 사준 빨간 원피스를 입고 춤추던 순간,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벚꽃잎을 한없이 맞던 순간, 구름을 가르며 경비행기를 조종했던 순간, 노인이 다 되어서 아내에게 매달 영화를 보러가자 약속했던 공원에서의 순간.


그 추억들은 모두 ‘순간’이었다. 

단편적이고 소박하고 일상적인, 극도로 평범한 순간들.


 2020년 11월, 평범의 정의가 달라진 뉴노멀 시대의 우리는 거리두기의 완급조절이 더이상 낯설거나 당황스럽지 않다. 달라진 상황에 맞게 내 계획들도 (더이상 허무함에 괴로워하지 않으며) 수정했다. 동시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올해와 이 영화를 계기로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단 한 순간의 기억과 감정만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막상 이렇다하게 떠오르는 게 없어 사진첩을 뒤적이다 생각했다.

‘주인공들처럼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남길 생각조차 못했던 순간들 속에 진짜 행복이 있을지 몰라’

혹은

'나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어!'

라고.


그럼에도 작은 순간들을 더 사랑해야겠다 다짐했다. ‘순간’이 ‘순식간’이 돼버리지 않도록 모든 시간을 감사해야겠다고. 그렇게 결론짓고나니 올 해의 나, 꽤나 잘 살았던 것 같다. 매달 새로운 시도를 했고 주변을 더 세심하게 돌아보았고 특히 자연과 가장 많이 교감한 해였다. 지금에 와서야 순식간에 달아나버린 시간에 황당해하고 있지만 추웅분히 순간들을 누렸다고 자부할 수 있다. 


쨋든,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고민하다가 가장 특별한 기억이라고 붙여주고 싶은 순간을 골라냈다. 매년 찾아오는 그 시절 냄새에 나는 여전히 아릿하고, 몇 없는 사진에도 하나하나 다 기억하는걸 보니. 내가 겨울을 마냥 싫어하지만은 않게 만들어준, 2016년의 아이슬란드.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게되는 날이 오면 기필코 나는 아이슬란드에 간다. 반드시!

이 글이 성지순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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