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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감자 Dec 27. 2020

세 치 혀의 세 시간짜리 후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내뱉고마는 순간이 있다. 침묵이 결코 금(Gold)일 수 없는 애매하게 낯선 사람과의 오붓한 시간이 그렇다. 친하진 않지만 귀찮다고 그냥 방치하기엔 어느정도의 정성이 필요한 관계. 날씨 얘기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오늘은 이상하게 춥지않다 부터 시작해 다음주 날씨 예보, 심지어 작년엔 어땠더라, 앞으로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다음 화제 전환을 위해 눈동자를 굴리고 잔꾀를 담당하는 뇌 부분이 열일을 시작한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두어시간동안 대화소재를 만들어내야하는 상황. 상대방도 그런 우리를 위해 애를 쓴다. 일단 이런저런 미끼를 투척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과 비슷한 것에 친밀감과 편안함을 느껴 쉽게 마음을 열기에 공통관심사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걸려든 우리의 공통 관심사. 음, 엄밀히 따지자면 공통 관심사 라기보다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상대로 싸우는 영국과 프랑스군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우리에게 독일이라는 공공의 적은 물고 뜯어도 질리지 않는 갈비같은 존재.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나의 실언. 평소 사람들에게 나는 독일의 변호인이었다. 모두가 상처받고 도망쳐도 그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그를 연민하자고 타일렀던 나였는데. 대화의 수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수압에 못이겨 혀를 나불대는 폭포수였다. 덕분에 수 분 후 우리는 같은 전장에서 싸운 적 없이 전우애로 서로를 격려해주는 그런 관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않아 난 깨달을 수 있었다. 세 치 혀의 나불거림으로 거래할 전우애였다면 애매하게 낯선 사이로 남는 게 더 좋았을뻔했다는 것을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나니 그 순간의 내가 선악과를 따먹게 하려고 없는 말도 지어내는 뱀이 된 것 같았다. 무언가에 홀려있던 게 틀림없다. 누군가의 환심을 사고싶다는 생각. 이간질을 해서라도 내 편으로 만들고싶은 마음. 그렇게까지 자학할건 없다고, 나치가 나빴던 건 사실이지 않냐고 해도, 중간에서 단물만 빨아먹는 미국이 되고싶은 건 아니니까. 차악이 아니라 최선이 되고싶다. 인간성을 그래야만 한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흉을 덜 보는 사람,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 희생을 더 감수하는 사람, 불평을 덜 하는 사람, 그런 비교우위를 세우는 인간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결한 인간이고 싶다. 내 삶에 스코어를 매겨 심사위원 앞에서만 반짝이는 무대 위 배우가 아닌 커튼콜이 끝난 무대 뒤 화장을 지운 '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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