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소 Oct 01. 2022

헐렁한 김밥이 단단해지기까지

조물조물 누르면 

어학원에서 독일어 수업의 B1 레벨이 마무리되기 일주일 전, 선생님 엘리나가 마지막 날 ‘Vielfalt Fest(다양성 파티)’를 하자고 제안했다.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모두 외국인이고, 출신 국가가 다양하다. 엘리나가 우리에게 준 숙제는 각자 나라의 요리를 하나씩 준비해 오는 것. 그리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 음식을 뭘 가져가야 할까? 외국에 살면 없던 애국심도 끓어오른다더니, 괜히 내가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인 양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우리 반의 한국인은 나뿐이었고, 내가 가져가는 음식이 적어도 우리 반 친구들에게는 한국 음식으로 기억될 거였다. 어학원에 가져가려면 음식이 식을 테니 국이나 밥 종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음식은 맛이 떨어질 테고, 아무래도 도시락에 적합한 음식은 식어도 맛있는 음식이어야 할 텐데… 그럼 역시 소풍 도시락의 정석, 김밥밖에 없었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언제나 고소한 냄새에 눈을 뜨곤 했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분주하게 밥을 짓고 속재료를 손질해 준비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주방으로 가면 보통 엄마가 김밥을 말기 시작하는 때였는데, 큰 볼에 담은 뜨거운 밥에 참기름을 졸졸 따르면 수증기와 함께 올라와 퍼지는 참기름 향이 그렇게 좋았다. 능숙한 손길로 뚝딱 말아 썰어놓은 김밥을 나는 예쁜 걸로 집어먹었다. 엄마는 꼬다리가 맛있는 거라고 했지만 입이 작은 나는 예쁘고 정갈한 중간 부분이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밥이 최고의 선택지였지만, 김밥은 제대로 싸려면 우주 최강 번거로운 음식이다. 한국에 살 때도 내가 직접 김밥을 싸 본 것은 두어 번 정도가 다였다. 그것도 본가에서 엄마가 이미 다 준비해둔 김밥 재료를 서울로 가져와서 김에 밥을 펼쳐 말기만 하거나, 또 엄마가 우엉조림을 너무 많이 싸준 다음이거나 하는 경우였다. 심지어 내가 싼 김밥은 식당에서 먹거나 엄마가 싸준 것과는 다르게 밥과 속재료가 단단하게 붙지 않고 헐렁해서 열심히 김밥을 만 보람 없이 김+밥과 내용물을 따로 집어 먹어야 했다. 일단 김밥으로 정하긴 했지만, 다양성 파티의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걱정이 깊어졌다. 그럴싸한 김밥을 내가 가져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김밥을 고집할 수 있었던 건 우리 집 요리사, 산이 어떻게든 해주겠지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취사병 출신인 산이 웬만한 요리는 대부분 뚝딱 해낼 수 있기에 나는 언제나처럼 내가 혼자서 하기 버거운 음식을 생각해내고, 내가 도와줄 테니 네가 어떻게 잘해보거라~ 하는 마음가짐으로 이번 미션도 해낼 요량이었다. 산은 김밥을 가져가겠다는 내 말을 듣고 너무 할 일이 많다며 난색을 표하다가, 결국 구원투수로 날 도와주기로 했다. 산도 나도 김밥을 말아본 경험이 많지 않고, 독일 슈퍼의 재료로 어떤 맛이 날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일단 미리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정한 메뉴는 불고기 김밥. 독일 슈퍼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Hackfleisch(다진 고기)에 양념을 좀 하면 김밥의 속재료로 넣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우리 반에는 튀니지에서 온 아랍인 친구가 있었는데,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니 특별히 소고기로 준비하기로. 일단 집 근처 아시아 슈퍼에서 김밥 김을 사고, 당근과 시금치, 고기, 달걀은 일반 슈퍼에서 공수했다. 달걀지단을 부치고, 당근을 채 썰어 소금 간해 볶고, 시금치를 데쳐서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으로 간장과 설탕, 마늘 양념으로 잠시 재워둔 고기를 볶았다. 벌써 일이 많다. 


마지막으로 참기름과 깨, 소금으로 간한 밥을 잘 섞은 후 김밥 말기 도전. 김발이 없어 그냥 도마 위에 김을 깔고 밥을 눌러 폈다. 내가 만 김밥은 언제나 헐렁했으니, 누르는 힘이 나보다 강한 산이 김밥 말기를 시도했다. 달걀지단이 생각보다 많아서 김밥 한 줄에 자른 지단을 여러 개 넣고, 채 썬 당근도 많이 넣었다. 김의 한쪽을 조심스레 들어 올려 둥글게 슉슉 말아서 완성. 김밥의 겉면에 참기름을 발라주고 산은 썰기 시작했다. 


단면을 잘라보니 이번에도 헐렁하게 싸진 김밥. 산이 말았는데도 헐렁한 김밥. 대체 김밥을 어떻게 싸야 헐렁하지 않고 꼭꼭 재료들이 잘 붙어 있는 것인가? 각양각색의 김밥을 만들어 올리는 인스타그래머의 영상을 봐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맛은 있었다. 독일에 와서 더 명확하게 알게 된 사실, 김과 밥과 참기름의 조합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뭔가 심심했다. 아무래도 역시 김밥에는 달면서 상큼하며 오도독하는 식감까지 선사하는 단무지가 필요했다. 달걀지단은 여러 장을 넣는 것보다 두껍게 부쳐서 하나만 넣는 게 모양이 더 예쁠 것이었다. 소고기는 채소들 사이에 넣어야 흩어지지 않고 잘 뭉쳐 있을 것이다. 여러 개선점이 보였다. 실전에서는 이 점들을 유의하기로 했다. 






다양성 파티의 당일, 평소보다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일어나 김밥 준비를 시작했다. 수업이 없는 산이 내가 씻는 동안 먼저 재료들을 손질했다. 정갈하게 썰어둔 당근과 양념에 재워둔 소고기를 볶았다. 재료 준비 완성. 또다시 이 녀석들을 김에 꼭꼭 넣어 말아야 했다.



산의 재도전 시작. 심기일전해서 밥을 펼치고 속재료를 올린 다음 한번에 휙 말아 꾹꾹 눌러주었다. 한 줄씩 싸고 잘라보며 단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소풍 당일이면 왜 엄마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김밥 준비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재료 준비에도, 김밥을 말아서 써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잘라본 김밥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쓸만한 것들이 있었다. 아주 단단하진 않아도 흘러내리지는 않을 정도였다. 못생긴 아이들은 아침밥으로 집어먹고 남겨두고 예쁜 아이들만 골라 통에 담았다. 깨소금까지 뿌리니 그럴싸했다.





김밥 전쟁이 치러진 집에 산을 남겨두고 수업 시작 시간인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왓츠앱 그룹방에 10분 정도 늦을 예정이라고 메시지를 남기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너도나도 늦는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아침에 요리를 준비해서 가져오면서 시간까지 맞추기란 역시 우리에게 너무 힘든 일이지. 웃음이 났다. 


바쁘게 달려간 것이 무색하게 내가 두번째로 교실에 도착한 학생이었다. 바로 먹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 엘리나가 11시 반쯤 쉬는 시간에 먹자며 음식을 주방에 두고 오라고 했다. 그래도 따뜻할 때 먹는 게 더 맛있는데. 괜찮아, 김밥은 식어도 맛있으니까.


쉬는 시간이 되고 드디어 시작한 우리들의 파티. 독일, 튀니지, 우크라이나, 태국, 베트남, 그리고 한국의 요리가 모두 한 테이블에 모였다. 한 시간이나 늦게 온 태국 친구 숌은 거대한 냄비를 들고 나타났다. 그 안에는 닭도리탕처럼 닭고기 조각이 뼈째 들어 있는 태국식 카레가 들어 있었다. 엘리나는 감자의 나라 독일에 어울리는 완두콩을 넣은 감자 샐러드와 바게트를 가져왔고 베트남에서 온 아네테는 베트남 요리 특유의 향신료 맛이 나는 돼지고기 감자조림을 준비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다리아는 호떡같이 생긴 빵을, 튀니지에서 온 라옌은 빵 같기도, 두꺼운 전 같기도 한 음식을 내어 놓았다.



내가 김밥을 꺼내자 엘리나가 "Koreanisches Sushi!(한국 스시!)"라며 좋아했다. 나는 스시가 아니라 김밥이라고 정정했다. 스시 중에도 김밥과 유사한 후토마키가 있지만 그래도 김밥과 김초밥은 엄연히 다르고, 특히 김밥이 한국 스시라고 불리는 건 정서상으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역시 해외에선 나도 모르게 애국자가 된다. 김을 노리(Nori, のり)라고 부르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 마당에... 알파벳까지 불러주며 Gimbab이라고 발음을 연습시켰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엘리나는 김밥을 먹지 못 했다. 엘리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라옌을 배려한답시고 소고기 김밥을 만들었는데 정작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요즘 독일에는 인구의 20%가 비건일 정도로 채식주의가 보편화된 나라인데, 케이크를 즐겨 먹는 엘리나가 고기를 안 먹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 했다. 안타까운 실수였다. 


모두들 김밥을 맛있게 먹었지만 음식의 강자 태국과 베트남을 이길 수는 없었다. 갑자기 어딘가에서 나타난 B2반의 비아시아권 출신의 친구들은 아네테의 고기감자조림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숌의 치킨카레도 인기 있었다. 우리의 정성 가득한 김밥은 모두 한두 번 가져가 먹긴 했지만 빨갛고 자극적인 동남아 음식에 밀려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빨갛고 자극적인 음식 하면 또 한국음식이지만 그런 건 식은 채로 가져올 수가 없다고... 음식의 온도에 민감한 나는 그런 걸 용납할 수 없어... 그러나 재밌게도 숌은 김밥을 정말 좋아했다. 사실 내 입맛에도 김밥이 제일 맛있었다. 역시 아는 맛이 제일 맛있는 건가. 두 통의 김밥 중 남은 김밥은 라마단 기간이라 함께 음식을 먹지 못 했던 라옌에게 저녁에 먹으라고 챙겨주고, 내 김밥을 좋아해 줬던 숌에게도 조금 싸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깨끗한 집에 산이 기진맥진한 채로 있었다. 잔뜩 어질러 놓고 도망가버린 나를 대신해 산이 모든 뒷정리를 마친 후였다. 많은 음식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김밥이 최고였다는 후기를 들려주면서 남은 못난 김밥을 주워먹는 산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산의 선생님인 인옥이 깻잎을 주었다. 인옥은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에서 나고 자랐다. 어머니가 텃밭에서 직접 기른 Bio(유기농)이라고, 직접 담근 깻잎김치와 날 것의 깻잎까지 챙겨 주었다. 자신은 여행을 가면 독일 빵이나 독일 음식이 너무 그리워지는데, 너희도 분명 한국 음식이 그리울 것 같다면서 말이다. 안 그래도 불고기 김밥을 싸면서 깻잎 위에 고기를 올려서 싸면 깔끔하고 맛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깻잎은 독일에서 구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직접 기른 깻잎이라니. 너무나도 고귀하고 소중한 깻잎.



깻잎이 생기자마자 메뉴는 결정되었다. 참치김밥. 내 소울 푸드 중의 하나. 한국에서 과음을 하고 들어가던 날이면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꼭 편의점에 들러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사 먹었다. 술을 자주 함께 마시던 학교 선배가 알려준 방법이었다. 사실 참치마요로는 특정하지 않고, 자기 전에 삼각김밥이나 뭔가를 먹어주면 다음 날 속이 훨씬 편하다고 했는데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편의점 음식을 자제하던 나에게는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먹을 수 있는 좋은 변명거리였다. 촉촉하고 진득한 마요네즈가 위장을 감싸면 정말로 다음 날 속 쓰림이 덜 하기도 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유독 우울하고 기운이 빠지던 날, 그럼에도 강한 허기가 몰려올 때는 참치김밥 한 줄에 작은 컵라면을 사서 집으로 갔다. 그런 날은 언제나 나를 위한 보상으로 "마요네즈 많이 넣어 주세요."라는 한 마디를 빼놓지 않았다. 깻잎과 컵라면이 느끼함을 잡아주니까, 첫 조각부터 마지막 조각까지 마요네즈의 가득 찬 풍부함을 느끼면서도 느끼함에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미각에 가해지는 자극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우울을 덮어주는 날이었다.



참치 통조림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독일 슈퍼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저렴했다. 삼각김밥은 할 수 없고 김밥집에서 파는 참치김밥에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서 귀찮으니,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참치김밥을 혼종한 레시피로 김밥을 말기로 했다. 산이 국물을 준비하는 동안 내가 말아보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실패를 떠올리며 비장한 마음으로 도전을 받아들였지만 깻잎과 내용물을 잘 컨트롤해서 김과 함께 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처음 말았던 김밥은 단단한 김밥을 싸기 위해서 너무 심하게 눌렀더니 참치마요가 김밥의 양 끝으로 다 빠져나왔다. 다음 김밥부터는 압을 조절하면서 신중하게, 둥글게 둥글게 만 김밥이 늘어갔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겉면에 참기름을 바르고 썰기 시작했다. 밥이 너무 많고, 참치마요의 분포도가 제멋대로였지만 속재료가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잘 싸졌다. 아주 예쁘진 않아도 모양도 그럴싸했다.



독일에서 즐겨먹는 소시지 고추장찌개와 함께 먹는 참치마요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산도 꽤 예쁘게 말아진 김밥을 보며 자기보다 낫다고, 재능이 있다며 앞으로 김밥은 나보고 싸라고 했다. 귀찮은 김밥 말기를 떠넘기려는 속셈같기도 했지만 뿌듯함이 더 커서 기꺼이 해주기로 했다. 




회사에서 나를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많이 잃어버린 건 자존감이었다. 쏟아지는 판단의 시선과 은근한 마음이 느껴지는 말들. 미움받고 있다는 공기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를 탓했다. 성과가 있어도 인정받지 못하고 열심히 해도 알지 못하는 상황,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황에서 나는 계속 작아졌다. 


퇴사를 하고, 독일에 오고나서도 한동안은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 마음이 나를 힘들게 했다. 몇몇 소중한 사람을 얻었지만 20대 후반의 중요한 시기에 보냈던 3년의 시간 동안 나는 잃어버린 것이 더 많았다. 더 많이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회사였지만 성장의 기회는 없었고, 그저 조용히 자리를 지켜야 하는, 내가 아닌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부속품이 된 것 같았다. 그 시간들은 나 스스로에게도 내 가치를 하향 평준화시켰다. 나는 특별하게 잘하는 일이 없어서, 적당히 할 수 있는 일만 있는 것 같은.


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다. 어학원에서 독일어로 비교급과 최상급 표현을 배워온 산이 숙제를 하다가 말했다. "자기도 이거 해봐. 내가 잘하는 것, 더 잘하는 것, 가장 잘하는 것. 자기한텐 그게 뭐야?"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잘하는 건 뭐지? 내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잘하는 일은 뭐지? 산은 게임을 잘하고, 요리를 더 잘하고, 운전을 가장 잘한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잘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게임도 잘 못 하고, 요리도 잘한다고 할 수는 없고, 운전도 못 한다. 전혀 거창하지 않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엉엉 울었다. 




산의 반에 음식을 준비해 가야 하는 날, 우리는 또 김밥을 싸기로 했다. 그렇지만 고민이 시작됐다. 비건인 인옥도 먹을 수 있는 비건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채식 김밥을 싸기에는 넣을만한 재료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떠오른 음식은 잡채. 잡채를 해서 잡채 김밥을 싸면 맛있지 않을까? 다른 친구들을 위한 참치마요 김밥과 잡채 김밥을 하자!


산이 Räuchertofu(훈제 두부)를 고기 대신 넣은 잡채를 만들었다. 김밥 말기는 나에게 맡겼다. 김을 펼쳐 잡채를 올리는데 잡채의 양 조절이 쉽지 않았다. 최대한 고르게 여러 채소와 단무지, 두부, 당면을 펼친 후 김밥을 말았다. 참치마요도 이전보다 넉넉하게 준비해 참치마요 김밥도 말았다. 


지금까지 만든 김밥 중 가장 괜찮은 모양의 김밥이 완성되었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나의 김밥 말기 솜씨. 완벽하진 않지만 밥과 속재료의 양도 적절하고, 무엇보다 전혀 헐렁하지 않고 꽉 잡힌 단단한 김밥이었다. 

 


한번에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습은 모든 일을 능숙하게 만든다. 잊고 있던 그 단순한 사실을 내가 싼 헐렁했던 김밥이 단단해져 가는 걸 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나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시간을 들여 정성껏 기름을 바르고 조물조물 눌러주면 헐렁했던 내 마음도 다시 단단해질 거라는 것을.


나는 이제 김밥을 잘 만다. 더 잘하는 것과 가장 잘하는 것은 아직 모르겠지만 잘하고 싶은 일을 시간을 들여 어루만지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곳에서 다행히 나는 잘 지내고 있다. 한 마디도 못 하던 언어로 대화를 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나에게 닥친 일을 하나씩 해내면서. 익숙했던 것이 소중해지고 낯설기만 했던 것이 익숙해져 가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다시 조금씩 자라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호수에서 맞이한 죽음의 공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