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유학생활은 녹록치 않다.
끊었던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고, 심장이 자주 심하게 뛴다.
여유로운 시간을 맘껏 가지면서 그동안 하지 못 했던 일을 하려고 온 이 곳에서 못난 나를 마주하느라 하고 싶은 일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시작한 심리 상담. 선생님은 내가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해야 해."라는 강박.
연습을 할 때도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
잘 해야 한다는 강박.
실수 하는 나를 받아들이지 못 하는 강박.
잘 하지 않는 나는 가치가 없을 거라는 믿음.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잘 쓰지 못 하는 것 같아서 쓰지 않고,
독일어를 더 유창하게 말하고 싶은데 잘 하지 못 하는 것 같아서 말하지 않고,
노래를 더 잘 하고 싶은데 잘 하지 못 하는 것 같아서 노래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모든 걸 못 하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더 잘 했던 것 같은데.
악순환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평가 받는 것이 두렵다.
내가 정말 못 한다고 누군가가 도장을 찍어버릴 까봐 두렵다.
내 생각이 사실일 것 같아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과거와 남을 탓하기에는 달라지는 게 없다.
내가 달라지기 위해서 이 곳에 왔는데
내가 있는 공간의 분위기를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해서 환경을 바꿨는데
그 누구보다도 달라지지 않는 나를 본다.
당당한 사람들을 보면 그저 숨고 싶다.
새하얗게 웃는 말간 얼굴들을 보면 내 얼굴의 그늘이 더욱 짙어진다.
해사한 그 미소들이 나를 더욱 검게 칠하는 것 같다.
검은 매직으로 온 몸이 칠해지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