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웠던 엄마의 돈까스가 떠올랐다

결혼기념일과 부모의 돈까스_달팽이 부엌 / <강릉 아닌 강릉 여행기 1>

by 지소


하루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 돌아왔다. 바로 기념일 계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결혼기념일. 11월 초는 2년 전부터 장기 휴가와 여행, 그리고 특별한 음식이 함께하는, 1년 중 가장 애써 기다리는 시기이다.


여행에 들떠 한층 ‘조’ 상태가 되는 동시에 이날만 되면 결혼식 전날과 당일 아침의 ‘울’이 떠오른다. 얼마 전 떠나 보낸 우리의 첫 집은 원룸이었다. 결혼식 전날 본가에서 올라오는 아빠, 엄마, 언니가 모두 잘 곳이 필요했기에 우리 가족은 우리 집에서, 산은 서울 외곽에 있는 그의 본가에서 가족과 함께 결혼식 전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는 저녁 8시 반에 서울역에 도착했지만 지하철을 반대로 타는 바람에 10시가 가까운 시간에 우리 집에 도착했다. (서울역까지 내가 가야했는데, 판단 오류였다.) 저녁을 못 드셨다고 해서 해장국 집에 갔고, 내일을 위해 저녁을 굶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계속 염분 폭탄 해장국을 권했다. 결혼식을 위해 딱 하나 부탁했던 아빠의 성혼선언문 낭독 멘트는 기차에서 부랴부랴 작성되었고, 결국 밤 11시에 마무리되었다.

결혼 준비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터라, 이 일이 나는 두고두고 서운했다. 긴 연설을 준비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성혼선언문과 아주 짧은 멘트만 부탁했는데 고민한 흔적 없이 바쁘게 쳐내는 무심함이라니. 새벽 2시에 들어온다던 언니는 나의 욕을 한바가지 먹고 다행히(?) 11시가 조금 넘어 집으로 왔다. 가족 중 누구도 신부인 나를 케어하지 않았다. 내일 비싼 화장을 얼굴에 착 붙이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아무도 내 컨디션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결국 엄마와 내 한복을 다려 놓고 한시 가까운 시간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당장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에 엄마는 우리 집 화장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시기에 나와 산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화장대 물건들을 넣을 수납장을 사서 다시 정리하기로 합의한 상황이었다. 그걸 엄마가 여기저기에 (내 기준) 마구잡이로 집어 넣고 있었다. 하나의 화장실에서 네 명이 씻어야 하는데 이미 일어난 엄마가 준비를 하지 않는 것에 1차 분노, 내 물건을 맘대로 건드리고 있는 것에 2차 분노.


“아니 그거 내가 나중에 정리하려고 일부러 놔둔 건데 왜 그걸 지금 정리하고 있는데? 어차피 내가 나중에 다시 다 해야 하니까 그냥 놔둬라.”

“어떻게 이렇게 해놓고 사노? 이사한 지가 언젠데…”

“신혼여행 갔다 와서 하려고 놔둔 거라니까? 빨리 씻으라고… 삼십 분 후에 나가야 하는데 그걸 왜 하고 있는데(짜증짜증).”


(엄마 기준) 기껏 생각해서 정리해줬더니 짜증내는 딸에게 열 받음.


“니 같이 성격 더러운 애를 사나가 어떻게 데리고 살겠노. 진짜 걱정이다.”


그렇게 나는 결혼식 아침에, 엄마피셜 성격 더러워서 아무도 못 데리고 사는 애가 되었다. 남들은 엄마가 부둥켜 안고 운다는데… 애틋하게 계속 바라본다던데…


후우.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정답이다. 무심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유달리 예민한 나는 스트레스와 상처를 많이 받으면서 성장과 트라우마를 반복했지만. 몇몇 일화를 되돌아보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시트콤 같은 상황이 이제는 웃기기도 하다. 엄마의 저 대사는 나중에 꼭 활용해야지.




2주년 기념 여행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기나긴 하소연을 하게 되었지? 애니웨이, 연초에 계획했던 보라카이 여행은 코로나 때문에 당연히 물 건너 갔고, ‘여행 적금을 털어 집을 에어비앤비처럼 꾸미자!’는 계획을 어느정도 실현시켰지만 그래도 집은 집인지라 아쉬웠다. 최근 주말마다 차박 여행을 떠나시느라 쏠쏠한 장비를 많이 구비하신 시부모님의 차와 물품을 몽땅 빌려 강릉으로 떠나기로 결정!(우리는 차가 없다...)


월초 2-3일은 내 업무 특성 상 한달 중 가장 바쁜 시기인데, 올해 11월은 주말이 껴 있어 결혼기념일 당일부터 휴가를 쓰려면 1 업무일에 모든 일을 쳐내야 했다. 나는야 의지의 한국인.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8시간 안에 모든 일을 끝내는… 데에는 실패하고 결국 1시간 30분의 초과 근무로 월결산보고서, 온라인 모임 오픈, 전시 물품 추가 세팅 및 기타 등등 수많은 업무를 해냈다. 덕분에 쌓인 피로로 여행 준비는 실패. 부랴부랴 세면도구와 화장품만 챙겨 출발하려 했지만 작동시켜 놓은 음식물 처리기를 끄느라 다시 올라오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기러 다시 올라오는 정신 없는 상황을 반복하면서 결국 12시 30분쯤 출발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 서울을 벗어나고 있는데,


- 산 : “차도 있는데, 작업실에서 카메라 가져갈까?”

- 나 : “카메라? 내 카메라로 찍으면 되지.”

- 산 : “그건 어두운 데서 잘 안 찍히잖아. 작업실에 삼각대도 있고 셀카봉도 있는데.”


고작 2박 3일 가면서(그것도 1일은 다 까먹고 있는 중) 차가 있다는 이유로 장비 욕심이 왕창 생긴 부부는 또 시간을 지체하기로 결정했다. 작업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고, 허기에 굴복한 우리는 결국 휴게소에서 여행의 기분을 즐기려던 계획을 뒤로하고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결혼기념일의 점심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달팽이 부엌’이라는 귀여운 이름의 식당에서.




우드톤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달팽이 부엌’은 카레, 돈까스, 닭튀김(가라아게), 소불고기 덮밥(규동) 등을 판매하는 일식 베이스의 자양동 가게다. 산의 작업실과 가까워서 오며 가며 자주 봤지만, 산이 한번 방문한 이후 크게 만족스럽지 않아서 잘 가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감성적인 인테리어를 밖에서만 구경하며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고, 이미 지체한 시간을 더 쓸 수 없는 데다가 당장 음식을 뱃속에 집어 넣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달팽이 부엌’에 발을 들였다. 쾌적한 공간과 테이블에 놓인 작은 생화에 기분이 좋았다. 같은 작업실 친구들의 “돈까스가 괜찮아.”라는 말을 바탕으로 산은 ‘돈까스 정식’을 골랐고, 나는 명색이 결혼기념일이니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다짐으로 2,000원 더 비싼 ‘치즈돈까스 정식’을 주문했다.



EA92D808-5D42-4BC8-938F-A4C75086B05F.jpeg 치즈 돈까스 정식 (12,000원)


잠시 후 촉촉하고 반짝이는 치즈가 한가득 들어있는 치즈돈까스가 내 앞에 놓였다. 모짜렐라 치즈 돈까스가 두 조각, 콜비잭 치즈 돈까스가 두 조각이었다. 먼저 콜비잭을 한입 베어 물었는데, 풍미가 좋고 부드러운 치즈가 먼저 입안을 감싸는 동시에 바삭한 튀김옷이 즐거움을 더하고, 촉촉한 돼지고기가 조화롭게 어울렸다. 모짜렐라 치즈돈까스도 질 좋은 치즈의 맛이 났다. 피자 치즈로 불리는 슈레드 치즈가 아니라 신선한 모짜렐라 치즈를 사용한 것 같았다. 치즈가 식은 후에도 딱딱하게 굳지 않고 여전히 부드러워서 마지막까지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colby_jack_cheese_featured.jpeg

콜비잭(Colby-Jack) 치즈는 미국식 치즈로, 콜비(Colby) 치즈와 몬테레이 잭(Monterey Jack) 치즈를 혼합해 만든다. 콜비 치즈 미국 위스콘신 주의 ‘콜비’라는 마을의 이름을 딴 치즈이다. 체다 치즈와 비슷한 맛이 나지만 제조 과정에서 차이가 있고 숙성 과정이 더 짧고 수분 함량이 높아 더욱 쫄깃하고 부드럽다고 한다. 몬테레이 잭 치즈는 캘리포니아 주에 온 멕시코 출신의 선교사가 ‘컨트리 치즈’를 만든 것에서 유래했는데, 데이비드 잭스(David Jacks)가 대량 생산을 시작하면서 생산 지역과 자신의 이름을 적은 것을 계기로 ‘몬테레이 잭’ 치즈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둘을 혼합한 ‘콜비잭’은 아웃백의 시그니처 메뉴이자 내가 사랑하는 ‘오지치즈 프라이즈’에 사용되는 그 치즈이다!그런 치즈를 사용했으니, 사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9D7E9EDB-42C2-48F6-A3E7-93C5BAB23ECE.jpeg 돈까스 정식 (10,000원)

치즈에 대한 감흥이 적은 산의 ‘돈까스 정식’은 두툼한 등심과 얇고 바삭한 튀김옷의 정석 돈까스였다. 타원형의 돈까스 두 덩이가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져 나온다. 치즈돈까스와 달리 생 고추냉이도 함께 제공되어 살짝 발라 먹으니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 주었다.




어릴 때부터 튀김을 워낙 좋아했던 내게 엄마는 매번 몸에 좋지 않은 것만 좋아한다며 타박을 했지만, 그러면서도 자주 번거로운 튀김을 해주었다. 공단의 구내 식당을 운영하던 아빠와 엄마는 종종 돈까스를 점심 메뉴로 제공했는데, 꽤 두툼하고 크기가 큰 돼지고기로 만든 시제품을 튀겨 내어 놓았다. 주말이나 학교를 쉬는 날이면 종종 식당에서 놀다가 끼니를 해결하던 나는 그렇게 크고 맛있는 돈까스를 양껏 집어갈 수 있는 자율 배식 시스템에 기겁했다. 정해진 양을 조리사 이모님들이 배식해주시는 학교 급식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에게 이렇게 팔면 뭐가 남냐고 물었고, 아빠는 그래서 손님들이 이전 식당보다 훨씬 맛있다고 좋아한다며 웃었다. 아빠와 엄마는 항상 좋은 식재료를 사용했고,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인사에 뿌듯한 사람들이었다.

나의 돈까스 예찬이 인상적이었는지, 그날 이후 돈까스 반찬을 하는 날이면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튀겨 엄마와 아빠는 집으로 가져왔다. 그러다 아예 식당에서 사용하는 냉동 돈까스를 통째로 우리 집 냉장고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집에 놀러 온 친구에게 그 돈까스를 왕창 튀겨준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만나면 산처럼 쌓아 놓고 먹은 돈까스를 잊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부모에게 서운한 것은 두고두고 기억하며 상처를 쌓아 두면서, 잘해준 일은 쉽게 잊는 것이 나라는 자식이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반대했어도, 먹고 싶어 하는 것은 한번도 허투루 들은 적이 없는 엄마 아빠였다. 그들에게 자식을 먹이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좋아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이 그들에겐 어떤 의미였는지.


엄마에게서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엄마는 내가 이날이면 2년 전 엄마의 독설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서운해한다는 사실을 알까. 그리고 한편으로 딸이 팔려가는 것처럼 울며불며 하지 않은 걸 얼마나 다행으로 여기는지도 알까. 내 말을 듣지 않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보냈던, 당시에는 서운했던 하루들이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엄마의 모습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그럼에도 충분했던 헌신에 지금은 내가 조금은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엄마가 계속 몰랐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