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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Oct 12. 2020

엄마를 닮은 직업


 부모가 되고 나니 어떤 고민에 마주했을 때 '내 아이가 이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주는 것이 가장 현명할까?' 하고 생각해본다. 가령 '엄마, 내가 어른이 돼서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어?'라고 묻는다면 '엄마는 호야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어른으로 크면 좋겠어.'하고 답할 것이다. 아이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것이다. '나는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고, 블록 놀이도 좋아하고, 낚시하는 것도 좋아하는데?'(이제 막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한 네 살배기 아들이 요즘 가장 좋아하는 일들) 이제 나는 가장 현명한 대답을 하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그럼 그중 호야가 제일 잘하거나,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가져봐. 둘 다라면 더욱 좋고!'


 어쩌면 이 서른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꿈을 찾 방황하는, 정작 내가 듣고 싶은 대답지도 모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중에 무엇을 고를까 고민했지,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그나마 나은 것을 고르려 고민한 적은 없었다.  화가, 특파원 기자, 뉴스 앵커, 판사, 변호사, 시인, 상품 기획자...  장래희망인 화가에 얽힌 비하인드로, 팔불출이던 엄마가 내 그림을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자 어쩌면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최고의 화가 대회에 나가고 싶었던 어린 나에게는 엄마가 곧 전부였으니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며 엄마 말고도 가끔 나의 전부가 되거나, 내 마음가짐에 지분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을 통해 나는 수시로 다른 꿈을 꾸기도 했다.


 갑자기 왜 일까? 고3 원서접수를 앞두고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엄마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유아교육과에 진학하고 싶은 이유를, 진학한 이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말이다. 나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어린이집 교사에서 원장직까지 맡으며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겼던 엄마를 내 미래의 전부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때의 엄마는 더 이상 교사도, 원장도 아니었다. 순댓국집 야간 종업원이었다. 나는 가끔 학교에 가기 전날 엄마가 일하는 가게에서 밤새 일을 도왔다. 엄마는 언제나 그런 나를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딸로 여겼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때부터 엄마가 자랑스럽지 않았다. '잘난 엄마는 왜 식당 아줌마가 되었을까, 어째서 본인이 아닌 나를 통해 기쁨을 얻으려 하는가' 엄마가 아닌 그녀가 안타깝고 가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마음이 다시 엄마를 내 전부로 만든 것이다.


 엄마를 닮은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에 후회는 없다. 다만, 부모로서 아이의 미래에 스스로 만들어 누리는 기쁨과 행복, 보람이 가득하길 바라는 나와 대조되는 그녀의 바람이 가끔은 무척 슬프다.


cover. <주안역 나의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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