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태-2/앙꼬 없는 찐빵

by tree

점심때 밭에 갔는데 아침에 만난 콩이 없다. 꼬투리가 활짝 열려 있고 빈 깍지다. 사부님 왈, ‘콩이 튀었네~’ 하신다. 콩이 튀는 줄도 모르고 얼치기는 사진만 찍은 셈이다. ‘튄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힘을 받아 갑자기 세차게 흩어지거나 퉁겨지다’이다. 꼬투리가 햇볕의 힘을 받아 터지면서 튀기 바로 전 그때, 꼬투리가 열린 순간을 나는 본 것이다. 뒤늦게 수확에 대해 알아본다. 콩은 열매를 위해 뿌리와 잎까지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다고 한다. 잎을 스스로 다 떨구고 가지도 툭툭 꺾이고 그 단단했던 뿌리도 쉽게 뽑힌다. 이렇게 쉽게 꺾이고 뽑히는 것에 빗대어 상대를 쉽게 무너뜨리는 씨름의 손기술 ‘콩꺾기’가 유래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서리태는 수확 후 손작업이 매우 많이 요구되는 작물이다. 방수포 큰 천을 펼쳐 놓고 뽑은 서리태를 눕혀 쌓아서 일주일간 햇볕에 시나브로 말린다. 도리깨로 타작을 해서 콩을 털어야 하고, 키질을 해서 검불을 날려 보내야 한다. 도리깨는 물론 키도 없다. 남편은 마당 비의 자루로 타작하고, 체에 걸러 티와 검불을 날려 보낸다. 나는 튄 콩들을 흙에서 잡아내고 썩고 깨진 콩들을 골라내고 채반에 널어 말린다. 저녁이면 안으로 거둬들여서 또 선별한다. 넓은 콩밭 수확을 콤바인과 탈곡기로 4시간 만에 끝냈다는 글을 읽는다. 우리는 하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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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루에 앉아 콩을 선별하는데 놓친 콩이 마루 틈 사이로 들어간다. 김용택 시인의 ‘콩, 너는 죽었다’가 떠오른다. 최근에 출판사를 달리해 새로 출간되었지만 내가 가진 책은 1998년 초판본이다. 이사 다니면서 많은 책들을 정리하고 여기 작은 집을 지으면서 최종 정리했는데 이 책은 지금껏 책장에 꽂혀 있다(아마 손녀를 주려고 남겨 놓은 것 같다). 27년 뒤에 내가 서리태를 심을 팔자였나? 피식 웃음이 나온다.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 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시집《콩, 너는 죽었다》, 실천문학사


잠자기 전 시간을 내서 1시간씩 최종 선별 작업을 한다. 서리태의 껍질은 까맣지만 속은 초록빛을 띠어 ‘속청’이라고도 불린다. 깜장과 초록의 색이 신비함을 준다.


나는 어렸을 때 매우 편식이 심했다. 반찬이라고는 김치 밖에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시어 터져 거품이 부글거리는 김치를 좋아했다고 한다. 콩밥은 콩을 쏙쏙 빼고 먹었다. 밥상머리에서 어머니의 지청구와 꿀밤은 항상 대기 중이었다. 안전을 위해 내 자리는 항상 아버지 옆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락 뚜껑을 열었는데 친구들이 하는 말이다, “어? 왜 네 밥은 까맣니?” 어머니가 콩을 다 빼고 도시락에 밥을 담으신 것이다. 검은 콩물이 든 쌀밥이었다. 콩은 없고 콩물만 든 밥, 앙꼬 없는 찐빵만 먹고살아온 인생은 아니었는지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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