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언어로 소통하는 빈센트

소통이야기(4)

by tree

자연과 함께 깊이 소통하고 있었던 빈센트가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뉘에넌의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적어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덩치가 크고 털이 지저분하며 발이 더러운 개를 집안에 들이기 꺼리듯 가족에게 자신은 ‘개’와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황야를 떠돌 때조차 이 집에서처럼 외롭지는 않았다고 그는 썼다.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번역·엮음. 126쪽) 아버지와 ‘시엔’의 문제, 그리고 종교적 신념의 차이로 자신은 ‘집어삼킬 파도’ 속에 있었고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간 것에 만족한다. 앞날이 험난할 것을 충분히 예감하지만 불행이라 생각지 않는다.(...) 위험의 한가운데에 안전이 있는 법이다.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라고 테오에게 묻는다 (같은 책, 50쪽). 단절과 고립은 빈센트를 외롭게 했지만 불행에 빠뜨리지는 못했다. 뉘에넌에 머물던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는 교회와 성경책 등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을 그려 추모했다.


<뉘에넌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뉘에넌에 있던 1885년, 그는 테오를 통해 파리에서 인기를 누리던 인상파 화가들에 대해 처음 듣는다. 그리고 이듬해 파리(1886-1888)로 향한 뒤 그의 색채는 눈에 띄게 밝아지고 확장된다. 우리는 흔히 그가 파리에서 색을 배웠다고 말하지만 그의 편지를 읽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그는 이미 파리 이전부터 자연과 깊이 호흡하며 빛과 색의 구조와 법칙을 분석하고 고민하는 흔적을 볼 수 있다.


그는 실내와 바깥에서 보는 모든 것은 빛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되어야 하며, 진정한 빛의 효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쓴다. 조명을 바꾸어가며 인물의 성격을 가장 완벽하게 드러내기 위해 신중히 계산했고(편지 275), 낙엽 위로 쏟아진 햇빛과 나무줄기의 긴 그림자가 서로 경합하며 만들어내는 밝은 무늬를 관찰했다.(편지 383) 깜깜한 밤, 오두막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화로의 붉은빛이 더러운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과 뒤섞이는 장면을 묘사하기도 했다.(편지 340) 어둠 속에서 빛의 언어를 사유하고 있었다.


스스로 채색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따금 왜 난 채색에 능한 화가가 아닌지 의아해지곤 한단다. 내 기질로 미루어 너 역시 충분히 기대할 만한 일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색채에 대한 감각은 아주 조금 발전한 셈이지’(편지 309) 그러나 그는 흙에서도 흑백의 다양한 변이를 발견했고(편지 331), 자연이 펼쳐 보이는 색조를 도저히 그릴 수 없을 것 같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본 색조이며, 다른 효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토대임을 깨달았다.(편지 340) 베틀 앞의 직조공들을 반복해서 그리면서도 다양한 색깔의 천이 짜이는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어둠과 빛이 대비되면서 천의 색깔과 대조되는 것을 관찰하고(편지 367), 마치 베틀 앞의 직조공이 실의 수나 직조 방향을 연구하여 색상의 조화로운 배합을 얻어내는 것처럼 캔버스 앞에서 색의 조화에 도달할 때까지 붓터치를 멈추지 않았다.(편지 404) 보색이 서로를 파괴하면서도 동시에 강화하고, 유사한 두 색상이 서로에게 미치는 효과를 탐구하며 그는 테오에게 부탁한다. ‘색채 문제를 다룬 좋은 책이 있거든 보내다오. 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 모르는 게 많으며 계속 탐구하고 있으니까’(편지 428)

색채를 입히기 위해 끊임없이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니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걸려 녹초가 되도록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도 털어놓는다. 그리고 파리로 가기 전, 마침내 이렇게 쓴다.

' 무언가를 시도하려면 간혹 벽에 부딪치곤 해. 하지만 색채는 저절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야. 처음에 하나의 색을 택하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을지 이제야 색채들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에 분명히 떠오른단다.'(편지 429)


자연 속에는 빛이 있고, 빛 속에는 무한한 색이 존재한다. 하나의 색은 또 다른 색을 부른다. 색을 조합하고 덧칠하면서 빈센트는 자신의 감정을 덧입힌다. 그리고 감정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색을 찾아내려고 몰입하고 있었다. 파리에 가기 전, 그의 영혼은 이미 색채의 스펙트럼 안에서 내밀하게 소통하고 있었다.


<직조공 Weaver, 빈센트 반 고흐>

그러나 그의 육체는 점점 쇠잔해졌다. 서른을 갓 넘긴 자신을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늙은이’로 묘사하기도 한다. 85년 12월에 쓴 편지에는 너무 오랫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탓에 어떤 음식도 소화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작업을 하면 활력이 넘치고 정신이 명료해진다. 그러나 육체는 쉽게 지치는 상태라고 쓴다. 수면과 영양의 부족, 밤낮을 가리지 않는 집중적인 작업은 한 인간이 끌어 모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나는『녹색수필집 Vol.5』(시와 산문)에서 ‘메니에르’ 병을 앓고 있는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난청이 문을 두드리고, 이명이 귓속을 채우면 귓속이 물에 잠긴 듯 먹먹해지며 현기증이 온몸을 휘감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난처한 점은 '돌발성'이라는데 그녀가 묘사한 감각을 나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후대 의학자들은 그의 편지와 증상을 통해 빈센트가 ’ 메니에르‘ 질환을 앓았을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뉘에 넌 시기의 편지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기 어렵다. 고립과 몰입 속에서 그의 영혼은 깨어나고 그림의 언어는 날마다 새로워졌다. 그러나 소진된 에너지와 과로 속에서 그의 육체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려한 도시 파리에서, 눈부신 태양의 아를에서, 생레미 요양원을 지나 마지막으로 머문 오베르에 이르기까지 그의 육체는 조금씩 더 흔들려 갔다. 마침내 그 뿌리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작가의 이전글흙의 언어로 소통하는 빈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