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소명을 붙잡는 용기, 빈센트

소통이야기(6)

by tree

빈센트의 아버지 테오도뤼스 반 고흐는 자신의 이름을 빈센트의 남동생에게 물려주며 희망과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훗날, 테오는 자신의 첫아들에게 형의 이름을 준다. 그때 빈센트는 요양원에 있었다. 세상은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테오는 형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아기가 태어나자 테오는 형에게 편지를 보낸다. 아기의 이름을 ‘빈센트 빌렘 반 고흐’로 지었다며 “이 아기가 형처럼 참을성이 많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여동생 윌에게 빈센트에 대해 이렇게 썼다. “형의 지식과 세상에 대한 명석한 시각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란다. 형 덕분에 난 많은 화가를 알게 되었어.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생각하면,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라 해야겠지. 평범함 때문에 퇴보했거나 그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들 말이야. 게다가 형은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란다. 형의 편지는 정말 재미있어. 형이 더 자주 쓰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이야”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신성림 번역·엮음. 195쪽』

참을성이 많고 용기 있는 사람,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챔피언,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세상이 이해하지 못했던 형을, 테오는 누구보다 정확히 보고 있었다. 테오의 시선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빈센트에 대한 낡은 이미지를 조용히 뒤집는다.


우리는 빈센트를 화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삶의 중심에는 오랫동안 ‘목회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화가가 되기 전 테오에게 보낸 편지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 시기의 편지들이야말로 훗날 화가로서의 삶의 존재 방식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대문이 아니라 현관을 여는 열쇠처럼, 내면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여러 목회자를 배출한 가문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성경 읽기는 일상이었고, 식사 때마다 성경을 읽는 것은 가족의 전통이었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그린 《성경과 소설이 있는 정물》에는 두 권의 책이 놓여 있다. 대대로 내려오던 국가 공인역 성경(1637년 출판)과 소설책이다. 성경은 목사가 되기를 꿈꾸던 그가 물려받아야 할 책이었으며 펼쳐진 부분은 이사야 53장이다. 닳고 닳은 에밀졸라의 소설 『삶의 기쁨』은 빈센트가 읽는 것뿐만 아니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친과 언쟁이 되었던 책이었다. 성경과 소설이 대비되는 긴장은 화가로서 그의 내면과 자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암스테르담의 신학교 입학에 실패한 그는 부친의 도움으로 벨기에 브뤼셀 근처 전도사 양성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필수과목인 라틴어와 희랍어 수업 중 교수에게 묻는다. “이런 공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고, 그들이 살아가도록 돕는데 꼭 필요한 공부일까요?” 그는 끝내 그 공부를 납득하지 못했고, 결국 전도사 자격도 얻지 못한다. 대신 부친의 요청을 받아들여 평신도로 사역할 기회를 주고 그를 파송하는데 그곳이 바로 보리나주 탄광촌이었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목회자 가정에서 중산층 삶을 살았던 빈센트에게 보리나주 광부들의 삶은 충격이었다. 매일 죽음과 맞닿은 노동, 병든 몸,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빈센트는 일체감을 느낀다. 제공된 숙소를 떠나 가진 것을 모두 나누어 주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그들과 함께 오두막에서 지낸다. 그는 당시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수없이 읽고 통째로 필사하며 매일의 삶에 실천하려고 애썼다. “우리 인생의 본분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을 간구하자” 라며 테오에게 쓴 편지에는 복음을 전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 이전에 광부들과 함께 가난해지는 전도자였다. 희생적인 그의 생활은 교회를 감동시키기도 하지만 기대한 성직자의 모습과 다른 것이었다. 결국 지원이 중단되면서 그는 교회 조직을 떠나야 했다. 실패와 절망이 얽힌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소명을 갖는다. 지하 수백 미터에서 캐낸 탄을 가마니에 담아 나르는 여인들의 무너진 어깨, 거친 손, 지친 몸을 거칠게 드로잉 하면서 그는 깨닫는다. 그림이 자신을 회복시켜 줄 것이며, 또 다른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그는 테오에게 이렇게 쓴다. “거친 드로잉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그림이 되듯이 진지하게 노력하면 서서히 그 목표가 구체화될 거야...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많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란다.”(편지 133) 그렇게 그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보리나주를 떠난 뒤에도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그의 그림 속에 남았다. 목회자의 소명과 화가의 소명은 서로 다른 길이 아니었다. 가난과 억압, 짓밟히는 고난의 자리에 함께하려는 그의 영성을 빼고서 화가 빈센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용기를 ‘극복’에서 찾는다. 그러나 빈센트는 많은 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생활은 안정되지 않았고, 생전에 인정도 거의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테오가 본 용기는 달랐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아도 자신의 소명을 버리지 않는 인내, 무너지면서도 진실을 향한 정직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 태도였다. 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빈센트를, 사람들이 감히 바라보려 하지 않는 깊은 곳까지 들여다본 사람이라고 말한다. 35점이 넘는 그의 자화상은 모델료가 없어 거울을 보며 연습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연작은 단순한 연습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1886년부터 1889년까지 3년 동안 자화상을 몰아 그렸다. 거울 앞에서 단순히 ‘보기’가 아니라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직면’하는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야고보는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을 보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다. (1:23~25) 거울을 보고 난 뒤에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드러나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타자처럼 바라보는 것, 계속해서 자신을 그리며 화가로서의 소명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시간이었다.


《까마귀 나는 밀밭》을 그리던 어느 날, 배에 총상을 입은 채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이틀 뒤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형이 이 땅에서 찾을 수 없는 평화를 찾았다”라고 테오는 아내에게 형의 죽음을 알렸다. 그의 죽음을 자살이라는 단어로만 규정한다면, 신앙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신앙인들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주변에 은혜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모든 사람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의 마지막 모습만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저울질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마지막 모습으로 평생을 재단하는 가혹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신앙인으로서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죽음에서조차 의미를 찾고 보여 주길 원하는 것은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여주려 애쓰며 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닐까. 그것이야말로 신앙의 길에서 넘어지기 쉬운 걸림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창한 예술을 하지 않아도 각자의 삶을 그리며 살아간다. 관계 속 철벽 앞에서 부서지고 차이 앞에서 흔들리며,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붙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는 시간들. 살아있기 때문에 흔들리는 시간들이다.


눌노리 마을 ‘빈센트 카페’에 걸린 빈센트의 그림들이 우리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와 이야기가 된다. 화려한 파리를 떠나 태양의 아를로 향했던 빈센트처럼, 이곳 카페에는 건물 속 교회를 나와 흔들려가며 용기를 내는 작은 공동체가 있다. 희망과 고통, 슬픔과 위로가 겹쳐진 채 흔들리며 서로의 흔들림을 붙잡아 주는 시간들이 이곳에 흐른다. 위트 있으면서도 조용하게,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려 용기로 소명을 붙잡는 카페지기 부부가 있다. 우리는 카페지기의 드립커피를 마시고 그림을 보며 테오의 음성을 듣는다.

“형, 용기를 잃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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