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흙에서 일어난다

by tree

올봄 내게 가장 먼저 도착한 전령사는 복수초였다. 2월 말일에 카톡으로 복수초 사진을 받은 뒤 나는 밖으로 나가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봄이 일어선다는 입춘(立春)을 지나 오늘은 세 번째 절기 경칩(驚蟄)이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시간, 이웃 농부들도 하나둘 밭으로 나와 있다. 거대한 시멘트 도시에 살 때는 꽃이 피는 것으로 봄을 보았지만 귀촌한 뒤로 나는 흙에서 가장 먼저 봄을 느낀다. 돌덩이처럼 굳어 있던 흙이 어느새 헐거워졌다. 봄은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흙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에 놀랐다. 작은 천을 사이에 둔 맞은편 집에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둥치를 파고드는 전기톱 소리가 고요를 찢었다. 내가 집 안에서 즐겨 앉는 자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던 나무였다. 마치 나를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나무, 해마다 4월말이면 꽃피기를 기다리던 라일락 나무였다. 가까이 가서 본 그 나무는 내가 살아오며 본 라일락 가운데서도 손꼽힐 만큼 수령이 많아 보였다. 보라색 꽃송이들이 햇빛을 받아 언뜻번뜻 하얀 빛을 내던 아름다운 나무였다. 특별히 라일락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내게는 오래된 기억을 품고 있는 라일락이다.


아이들과 교실 밖 수업을 하며 교정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내나무’ 찾기를 한 적이 있다. 설립된 지 오래되었고 제법 큰 학교여서 앞마당과 뒷마당 곳곳에 나무들이 많았다. 말 못 할 일이 있거나 쉼이 필요할 때 찾아갈 수 있는 ‘내나무’를 정해 보자는 것이었다. 졸업 후 다시 교정을 찾게 되면 그 나무 앞에 서서 추억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나 역시 교정에서 ‘내나무’를 정했는데, 벤치에 앉으면 뒷배경이 되어주고 향기를 덤으로 건네주던 라일락 나무였다. 훗날 내가 일부러 교정을 찾았을 때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내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종일 속상하다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라일락을 기다리는 시간이 베어지면서 슬픈 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계절이 전하는 생명의 약속을 찾으려 멀리까지 시선을 두고, 가까이 있는 것은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아직 꽃이 피기 전, 물이 오른 별목련 나뭇가지를 매만져 보다가 문득 한 그림이 떠올랐다. 요양원에 있던 빈센트 반 고흐의 병이 깊어졌을 때 그린 그림, <꽃 핀 아몬드 나무>였다. 조카의 출생 소식을 전해 들은 빈센트가 아기 빈센트를 위해 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겨우내 추위에 떨던 아몬드 가지를 그리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붓을 들기를 반복하는 그 사이 꽃봉오리들이 하나둘 열렸다. 붓질은 침착하고 어느 때보다 공을 들였지만 몸은 다시 고꾸라졌고 회복은 더디었다. 그 사이 꽃들은 지고 말아 더 많은 꽃가지를 그리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아가방에 걸어 두기 위한 그림이었다. 2월에 시작해 4월에 완성한 그림을 테오에게 보냈다. 요양원을 떠나 오베르로 가기 전 4월 말 그는 사흘 동안 테오의 집에 머물렀다. 침실 벽에는 그 그림이 걸려 있었고, 침대에는 석 달쯤 된 아기 빈센트가 누워있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봄이었다. 그림 앞에서 아기 빈센트를 바라보고 서 있었을 빈센트의 마음으로 나는 봄을 시작해 보고 싶다. 내가 사는 세상도 그림처럼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저런 상념 중에 있다가 이웃집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냉이를 캐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신다. 나는 호미를 챙겨 냉큼 따라나섰다. 얼치기인 내 눈에는 냉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 호미를 들고 바닥만 노려보던 나를 아주머니들이 불렀다. 냉이가 많은 곳으로 나를 부르신 것이다. 여기저기 짚어 주신다. 냉이는 발에 밟힌 듯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있고 풀 속에 가려져 있으며 흙색과 비슷해 얼치기 눈에는 쉽게 띄지 않았다. 캐낸 냉이의 뿌리는 통통했고 길이는 족히 10센티쯤 되어 보였다. 혹한을 견디며 돌덩이 같은 흙 속에서 뿌리를 키워 온 냉이를 보며 감탄하는 시간 반, 캐는 시간 반을 보냈다. 비록 내가 캐낸 양은 이웃들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충분했다. 캐는 데 한 시간, 다듬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허리는 아팠지만 생명을 약속하는 자연과 계절의 봄이 고마웠다.


냉이는 순우리말이다. 어떤 이들은 냉이(冷伊)라고도 부른다. 어찌 되었든 그 이름이 참 예쁘다. 한국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 ‘순이(順伊)’ 때문인지 냉이라는 이름도 왠지 친근하다. 추운 데도 나가서 놀기 좋아하는 아이 같은 이름이다. 남쪽에 사는 한 고수의 냉이 캐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그는 호미로 하나씩 캐는 것이 아니라 삽으로 밭을 뒤집은 뒤 풀 속에 섞여 있는 냉이를 골라낸다고 한다. 냉이의 대부분은 차가운 흙 속에 묻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추울수록 맛있고 눈을 뒤집어쓴 뒤에 캐는 게 좋다고 한다. 냉이를 캐던 낮에는 맑았는데 밤이 되자 예상치 않게 눈이 내렸다. 눈을 뒤집어쓴 냉이를 캐러 또 나가야겠다. 봄은 이렇게 자꾸만 나를 밖으로 부른다.



작가의 이전글흔들리며 소명을 붙잡는 용기, 빈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