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미스테리#김과장#직장인라이프#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쾌함이 내 안에서 서서히 올라왔다. 퇴근 무렵, 멀끔한 모습으로 사무실에 돌아온 김 과장은 나에게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적당히 마무리하고 어서 들어가요”라고 옅은 미소와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유도 없이 그저 불쾌했다. 본부장에게 내가 본 것을 전해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퇴근하던 옆 팀의 미랑 씨가 다가와 말했다. “제니 씨, 이제 퇴근해요? 전철 타고 가실 거면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가요!”
우리 둘 다 입사 시기가 비슷해서 그나마 유일하게 표면적으로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미랑 씨다. 그녀는 국내 명문대학을 나와 사내에도 학교 선배들이 많아, 나와는 달리 이런저런 모임도 많고 나름 잘 적응해서 지내고 있다. 소심한 유학파 아싸인 나와는 많이 다르다. 가끔 미랑 씨를 보면 나도 그냥 국내 대학을 나와 네트워크라도 쌓을걸 하는 후회도 들곤 한다. 이 회사에서 그녀의 미래가 나보다 더 보장되어 있어 보이기 때문인 걸까? 사내 소식통이기까지 한 그녀에게 순간 김 과장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오늘 일을 못 본 것으로 머릿속에서 지우자는 생각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도 잠시,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팀 김 과장, 요새 어때요? 그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요? 괴소문도 많고… 자주 제니 씨 책상 앞에 가서 웃고 말시키고 그러던데, 조심하세요.” 순간 헉 소리가 날 만큼 놀랐다. 미랑 씨가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건가… 왜요? 왜 그런 말씀을 갑자기 하세요? 하고 궁금한 듯 그녀를 쳐다봤다. “아니 뭐, 그분 곧 회사에서 짤릴 거라고 다들 그러기도 하고, 어린 여자를 엄청 좋아한다는 소문도 있고, 더 대박은 근무 시간에 외도를 한대요, 글쎄… 여러 협력사 부근 뒷골목 모텔에서 김 과장을 봤다는 협력사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니까요… 이쯤 되면 본부장도 알고 있을 거고, 실적도 최악이니 곧 짤리겠죠? 그러니 그때까지 제니님도 꼭 조심하세요! 괜히 이상한 사람하고 엮이지 마시고요, 그런 사람들은 잘해주면 착각한다니까요!”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들은 것 같아 이제 더 이상 궁금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지만, 뭔가 그냥 헛헛했다. 바람피우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일주일 내내 구겨진 와이셔츠 두 개를 돌려입고, 언제 산 건지도 모를 긴 통바지 양복을 입고 다니며, 마치 홀아비라고 해도 믿을 만큼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라 외도나 바람이라는 말이 사실 어울리지는 않았다. 이럴 때 사람들은 '씁쓸하다'는 표현을 쓰는 걸까? 인생이 이런 거라면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올해 26살인 나에게 스쳐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시간은 잘만 흘러갔다. 달력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미운 월요일이 또 찾아왔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어떤 시간 안에 갇혀 무한 루프를 도는 듯한 본부장의 잔소리와 팀원들의 꿍시렁거리는 소리, 김 과장의 연이은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라는 AI 반복음성을 연상케 하는 이 모든 반복된 상황들.미팅이 끝나자마자 본부장이 김 과장을 끌고 가기 전, 팀 내에서 막강한 파워와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한채령 이사가 김 과장을 낚아채갔다. 한 이사는 나의 롤모델이다. 언제나 당당하시고 솔직하시며 자신감이 넘치신다. 웬만한 팀 프로젝트는 한 이사가 리드하시고, 수차례의 시도 끝에 기적적으로 40살에 얻으신 귀한 딸 덕에 엄마 역할도 회사 안에서 그분의 존재감은 한없이 빛난다. 그래서 그런지 웬만한 직원들은 한 이사님을 곧잘 따르고, 커리어 상담이나 기타 고민 상담도 많이 한다. 여성 임원이 좀처럼 보기 힘든 회사에서 실력만으로 차세대 임원으로 각광받고 계시기에, 본부장도 한 이사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그런 한 이사가 김 과장의 목덜미를 잡아 가로채갔다. 두 분은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외근 없이 사무실로 돌아와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일을 하셨다. 그리고 퇴근을 함께 하시는지, 두 분이 짐을 챙기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따라 짐을 챙기고, 한 발짝 뒤에서 언제나 그렇듯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그 두 분을 따라 퇴근 발걸음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