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김과장 <1화>

#오피스미스터리 #직장인미스터리 #회사생활 #글로벌기업

by 란어웨이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공포의 월요미팅. 모든 기업영업팀 사람들이 모여 돌아가면서 각자 매출 현황을 보고한다. 전체 팀 실적이 부족하면, 침묵 속에 고객을 숙이고 앉아있는 머리 하얀 본부장과, 이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는 영업팀원들, 그리고 팀의 막내이자 신입사원인 나, 김제니가 있다. 이것이 우리 회사 기업영업팀의 전형적인 월요일 아침 모습이다. 사실, 엄마, 아빠 등골 빼서 고등학교부터 미국의 보딩스쿨을 거쳐, 아이비는 아니지만 이름 대면 알 만한 미국의 소위 명문 대학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나의 목표는 미국의 잘나가는 컨설팅 회사에서 전략 컨설턴트로 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졸업 후 나에게 비자를 스폰해주겠다는 기업은 없었고, 결국 아쉬운 마음과 허탈한 마음을 가득 담은 채, 루저 같지 않은 루저의 모습으로 한국에 귀국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원서를 돌리게 되었다. 그나마 운 좋게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들어갔다.엑셀 파일을 만들어 각 영업팀들의 개별 실적을 정리하고, 실적이 부진한 사람들에게 연락해 어떻게 이번 매출을 채울지 액션 플랜을 받아 희망찬 예상 매출 실적을 이쁘게 만들어 본부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내 마음의 답답함과는 다르게, 부모님은 그래도 한국에서라도 빠르게 취직이 된 게 다행이라며 흐뭇해하신다. 나라면 그동안 나한테 들인 돈과 시간을 고려해서라도 좀 더 나은, 멋진 곳에 취직하기를 바랐을 텐데… 그래도 부모님께 손 안 벌리고 뭐라도 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한다.이런저런 딴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숨 막힐 것 같은 회의 시간이 끝나고, 실적이 매우 안 좋은 영업사원만 본부장과 일대일 면담 시간으로 끌려 들어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김 과장이다. 벗겨질락 말락한 앞머리와, 그렇지만 뒷머리는 아직 건재한 모습. 늘 알 수 없이 불그스레한 얼굴과 유난히 볼록 튀어나온 배가 특징인 우리 부서의 김 과장.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는 얼핏 부장 같지만, 가끔 수줍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아직 중년은 아닌 것 같긴 하다. 30분 뒤, 본부장 방에서 나오는 김 과장의 얼굴은 더 불그스레하게 상기되어 있고, 그는 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신다. 이번 달 매출을 채우려면 이 더운 무더위 속에서 아마도 바쁘게 뛰어다니셔야 할 것 같다. 곧바로 본부장이 나를 부른다. 협력사에 계약서류를 전달하라는 심부름이다. 퀵서비스도 있는데 왜 맨날 나를 보내시는 걸까? 아날로그를 사랑하시나… 그래, 바깥바람도 자주 쐬야지. 그래도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나서 전철은 좀 여유롭다.

어서 서류를 전달하고, 예전에 찜해둔 원두향이 그윽히 퍼졌던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빨리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일사천리로 협력사 담당자에게 서류를 전달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빠른 걸음으로 협력사 뒷골목에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명한 브랜드 커피숍이 아니라서 좀 뒷골목에 위치해 있지만, 그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커피향이 퍼지는 게 너무 기분 좋다. 주문을 하고 커피를 기다리는데, 저기 낯익은 김 과장의 모습이 보였다. 협력사에서 미팅을 하고 나오시는 걸까? 미리 알았다면 서류 전달을 부탁드려도 허허 웃으면서 대신 전해주셨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커피를 받아 돌아서는 순간, 나는 내 눈을 다시 비비고 김 과장이 들어간 건물의 간판을 다시금 쳐다봤다. 그곳은 다름 아닌 "평일 낮 대실 2만원부터"라고 적힌 모텔이었다.매달 실적에 허덕이며 팀 내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으면서도 허허실실 웃기만 한 김과장. 그래도 팀 내에서는 유일하게 나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가끔 점심도 사주시며 챙겨주시는 분이었다. 그런 김과장이 이 시간에 왜 저 후미진 골목의 모텔로 저렇게 자연스럽게 들어가시는 걸까? 너무나도 궁금해졌고, 온갖 아침 드라마의 단골 스토리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안에 들어가면 여자가 있을까? 이제 돌 지난 아이가 있는 과장님이 와이프와 이 시간에 만날 리는 없을 텐데… 실적이 부쩍 떨어지고 회복이 안 되는 게 근무 시간에 딴짓을 하고 다녀서 그런 걸까? 라는 나름의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반사적으로 떠오른 건 본부장이 팀 미팅 때 김 과장을 깨면서 자주 하셨던 "너는 도대체 근무 시간에 영업은 안 하고 뭘 하고 돌아다니길래 맨날 실적이 이 모양이야? 고객이나 협력사를 만나기는 하는 거냐? 너 투잡 뛰냐?" 등의 대책 없는 모멸감 어린 멘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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