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by 란어웨이

이렇게 돌아가는 길이 설렐 줄은 미처 몰랐다.

어느덧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지도 6개월. 언제 그곳에서 살았었나 싶을 만큼, 나는 어느새 정신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온 듯 주말도 없이 일에 파묻힌 워크홀릭이 되어 있었다. 정신없는 일상과 잦은 출장 속에서 쏜살같이 시간이 흘렀고, 그렇게 다시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익숙한 창이공항에 도착해 여권을 이민국 시스템에 갖다 대니, 화면에 ‘Welcome Home’이라는 문구가 떴다. 그 짧은 찰나, 묘한 감정이 가슴을 스쳤다. 익숙했던 곳이 낯설게 느껴질 것 같은 순간.

그러나 곧 창이공항 특유의 냄새와 공기의 결이 온몸에 스며든다. 익숙하게 그랩을 타고 호텔로 향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매일 다녔던 마트 체인에 들른다. 한때 매일 출근하던 오피스를 이제는 방문객의 시선으로 다시 걷고, 늘 마시던 커피를 들고 마리나베이 전경을 바라본다.

그 순간 문득, 나는 어쩌면 너무나도 럭키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한때는 당연하던 나의 일상이, 그 일상에서 벗어나고 나니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그 특별함을 지금,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시 느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신의 은총이 아닐까.

여전히 내 마음은 모든 순간에 반응하며 뛰고 있다.

익숙함에서 오는 설렘에,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그런데 참 이상했다. 다시 돌아온 싱가포르에서 나는 마치 여행자 같았다. 너무 익숙한데, 조금 낯설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외국인들, 햇볕에 반짝이는 고층빌딩들… 모두 그대로인데 나만 조금 바뀐 기분이었다.반대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는 때때로 ‘이방인’처럼 느껴지곤 했다.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음식을 먹고, 매일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그 모든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어딘가에 가방을 놓고 온 듯한 기분. 그 가방 안엔 나의 지난 시간, 나의 습관, 나의 감정들이 들어 있었고, 그건 아직 싱가포르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나는 이제 어느 한 곳에만 속하지 않는다. 서울의 빠른 속도도, 싱가포르의 여유로운 공기도, 모두 내 안에 공존하고 있다. 두 도시는 다르고, 리듬도 다르지만, 그 리듬을 오가며 살아가는 내가 조금 더 유연해졌음을 느낀다. 어느 하나만 고르기보다, 두 세계 사이를 잇는 다리 같은 존재가 된 것 같기도 하다.그래서일까. 돌아왔지만, 나는 아직도 싱가포르를 조금씩 살아내고 있다. 한국의 아침 출근길에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도, 바쁜 회의 중 문득 마주치는 햇살 속에서도,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엔 마리나베이의 물빛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익숙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익숙함은 낯설어지는 법도 없다. 단지 그것을 기억하고, 품고, 살아내는 방식만 조금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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