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하면 자유로워진다고 하는데
홀로 선 지 만 삼 년이 넘었다.
전 남편이나 나나 돈 모으는 데는 잼병이었다. 집 안에 물이 줄줄 새는 구멍 난 장독도 있었지만 우리 둘 다 계획성 없는 소비생활에 모인 돈이 없었다. 갈라설 때는 아파트 한 채와 은행 대출금만 있었는데 그걸 반으로 나누니 작은 평수의 아파트 전셋값 정도가 되었다. 청춘을 바쳐 일한 세월이 몇 년인데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재산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나 나나 이렇게 답도 없이 죽는 줄 모르고 같이 살았던 것이다.
함께 미래도 없이 사는 것보다 이제라도 헤어져서 각자의 살 길을 찾기로 한 건 잘한 것 같다. 지금도 후회는 없다. 진짜 내가 된 느낌이다. 현대를 각자도생 사회라고 하지 않는가. 예전에 가족은 운명 공동체였기에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했다. 집안에 될 성 부를 나무가 될 떡잎을 보이는 누군가가 있으면 가족공동체 멤버들의 희생은 당연한 거였고 특별한 떡잎을 가진 한 명에게 집중적인 투자는 가족 모두가 살수있는 방법이기도 었다.
그렇게 자라난 그(주로 가족공동체 부양의 책임은 남자에게 있었기에)는 부와 명예가 따르는 좋은 직업을 통해 가족들로 받은 것을 돌려주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다. 고부간의 갈등, 아들과 딸 간의 갈등, 출가한 아들 부부간의 갈등 등 가족 공동체 내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곪아 가족 간의 해리현상이 생기고 결국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살고 있으면 가족을 도와주는 것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더 삶이 팍팍해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가족은 각자도생의 모범답안이다. 부부는 헤어져서 각자 제 앞가림을 알아서 하고 있고, 큰 딸은 부산에서 있는 게임회사에서 돈 잘 벌면서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고 있고, 작은 딸은 대구에 있는 패션회사 마케터로 일하면서 사장으로부터 귀한 인재로 능력 인정받으며 근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이 오십 중반이 되어 자유부인이 되었다. 정비석 소설 속 여자 주인공처럼 자신의 의지로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생긴다. 하지만 놀아본 사람이 잘 논다고 어딜 가든 쭈빗주빗하고 내 안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두렵고 불편하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남은 나에게 관심 없다. 그들이 관심 있는 건 오직 자신들 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요즘 내 머릿속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질문이다. 그동안 이것저것 하면서, 예를 들면 책을 낸다던지, 바디빌딩 대회에 나간다던지, 브런치 작가가 된다던지, 언젠가 나만의 밴드를 가지기 위하여 드럼을 배운다던지, 바쁘게 살고는 있지만 어디로 삶이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나를 보는게 참 아이러니 하다. 내가 혼자가 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답이 보이는 삶이 싫어서였는데. 자조적 웃음이 나온다.
작년에 집 사이즈를 줄여서 대출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에 어디로 이사할지 집을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2020년 히로시마 꽃축제에서 K-Food 부스를 같이 운영하면서 친해진 요리 연구가가 나한테 하는 말이다.
"뭘 집을 구해? 그냥 우리 같이 살아"
같이 살겠다는 생각은 한 적 없는데 그 말을 들으니 머리가 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는 습관적으로 아님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마주하든 간에 뇌신경회로가 되는 방향으로만 작동이 된다. 안 되는 방향으로 생각해보지 못하는 나는 그날도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같이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칠십이 넘은 싱글이다. 그러나 외모만 봐서는 아무도 그 나이대로 보지 않는다. 정확한 나이는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1950년대 생이다. 20세 초반에 복장학원을 나와 패션디자이너로 서울에서 샵을 운영했었으니 상당히 앞서간 신여성이었다. 그러면서 평소 음식을 만들고 남을 대접하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취미로 한 것이 어쩌다 보니 그녀의 두 번째 직업이 되었다. 요리가 그녀의 두 번째 인생인 것이다.
패션디자이너로 일했을 당시 사랑의 열병을 앓게 한 남자도 있었다고 한다.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 남자의 조건이 그녀를 앞서가는 신여성으로 길러 낸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칠 못했다. 거듭된 반대로 인해 남자는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녀와 그 남자의 서로에 대한 식지 않은 사랑은 남자의 결혼 뒤에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게 만들었다. 그러다 수십 년이 흘렀고 여자는 나이를 먹어 소녀 같은 할머니가 되었다.
"그냥 내 딸 해"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그녀가 엄마도 아빠도 없는 나에게 하는 말이다. 오랜 외로움이 그녀로 하여금 이런 말을 하게끔 만들었을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참 익숙해지기 어려운 감정이다. 혼자의 삶을 선택하면서 자유로운 싱글라이프를 보내고 있는 나이지만 혼자 집에 있을 때마다 불쑥 다가오는 외로움은 감당하기가 어렵다.
외로울 때 연인을 만들지 말라는 말도 있다. 외로움이란 감정은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나에게 맞는 사람인지 안 맞는 사람인지에 대한 구분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지기능을 저하와 함께 상대방과 상황에 대한 작의적 해석을 하게끔 만들어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쉽게 만든다.
안 그래도 외로운데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억울한 경우를 안 만들기 위해서는 남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Love yourself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며 긍정적 삶을 살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것을 포함하여, 내면의 자아와 소통을 하는 것을 말한다. 내면에게로의 회귀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감정 변화를 인지하면서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는 힘을 길러준다. 타인의 가치가 아닌 나의 가치를 알기에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부당한 것에 대한 거절도 건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우리가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도록 돕는다. 무엇보다도 자존감을 높여서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불안정한 태도를 보이지 않게 된다.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가 나의 행복을 바라듯이.
행복이 목표가 되면 '남들은 다 행복하게 살고있는데 왜 난 불행하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질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 순간에서 기쁨과 감사를 느끼는 것이 좋다. 행복이 디폴트 값이면 지금 자신을 불행하다고 보기 쉽지만 원래 인생이 힘든 거야 라는 불행을 디폴트 값으로 생각하게 되면 행복은 너무도 감사한 것이 된다.
커다란 성취를 통해 얻는 행복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 너무 힘들어진다. 커다란 성취는 자주 오지 않으며 그러면 우리는 인생의 많은 부분을 불행하게 여기며 사는 굴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행복감을 맛보았는가.
근력운동을 반복하면 중량감있는 무게도 더 쉽게 들 수 있듯이 우리의 감정도 감정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 사랑을 더 잘할 수 있다고 하듯이 자주 행복한 사람이 더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자주 행복한 자가 이기는 것이 인생의 법칙이다.
지금 바로 쫓기는 일상에서 잠시 쉼을 취해보자. 하던 일을 멈추고 등을 바르게 펴서 깊은 호흡을 세 번 들이마시고 내뱉어 보자. Breathe in, breathe out.
깨달은 자들은 모든 것이 호흡에 있다고 한다. 호흡만으로도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 멈추고 깊은 호흡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면 즉각적으로 스트레스가 낮아지고 불안한 감정이 안정적으로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주의가 높아지게 한다. 비록 사소한 것인지라 하더라도 내가 온전히 현재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행복해진다.
행복은 결국 나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감정을 잘 다루기 위한 잠시 멈춤과 깊은 호흡법을 통해 내 안을 들여다보자.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답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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