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외로움에 하게 되는 실수, 닮았다는 착각
사람이 그리웠다.
3년을 친자매처럼 붙어 다니던 나의 소울메이트 미미가 그동안의 한국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가슴은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 허전했다. 미미 앞에서는 내색을 하고 싶지 않아 그녀가 떠난다는 생각을 강제로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헤어지는 시간은 부지불식간에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그녀가 떠나는 인천공항까지 배웅을 갔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면 눌러 두었던 감정이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우리는 꼭 필요 한 말 이외에는 침묵 속에서 대화를 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출국 수속장으로 가는 그녀를 보면서 잘 가라는 말대신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무슨 말을 꺼내려다가 목이 잠겨 얼른 입을 닫았다. 수속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 계속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 둘 모두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고 할 수 있는 건 그냥 서로를 쳐다보면 손을 흔드는 것뿐이었다.
여유시간이 생기자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뭐라도 해야 이 허전함을, 외로움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저것 배우면서 몸을 바쁘게 만들어 외롭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현대 경영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경영철학을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그곳에서 전남 화순, 전라도 광주, 평택, 영천, 부산 등에서 공부하러 오는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주말은 항상 그들과 공부하고 만나는 일정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흥미로운 사람들이 참 많다.
연세대를 자퇴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 서울역 길바닥에서 한겨울 밤을 보내고 있는 노숙자를 보면서 세상 인정의 메마름에 환멸을 느껴 고향 전남 화순으로 내려와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피터를 만나고, 뇌공부를 하면서 건강전도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간호사 지니를 알게 되고, 심리학과 죽음학을 전공하고 명리학을 공부한 뒤 평택에 상담카페를 차리고 운영하면서 사랑학 강의를 준비하고 있던 지니도 알게 되고, 한때는 잘 나가던 섬유업계 여장부지만 사기를 당해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린 비주안도 만나고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배움과 성장에 열망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영업이나 자신의 사업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특히 내가 느낀 것은 심리학이나 코칭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항상 자기 계발과 아이디어를 위해서 계속적으로 공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직장에 제공하는 의무교육에만 참여하고 내 돈 주고 외부 교육을 따로 받는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지 못했던 나와 나의 직장동료들이 떠올랐다. 사실 우리는 양질의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공무원교육원 같은 기관이 있기에 개인 역량을 올리고 싶다면 얼마든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제공되는 교육은 조금은 정형화된 것들이다. 직무와의 연관성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공부한 피터 드러커 경영철학이라든지 Neuro linguistic programming (NLP)와 같은 강의는 듣기가 어렵다. 수백만 원씩 줘야 하는 직무와 상관없는 교육을 교육원에서 제공한다면 그것도 예산 낭비일 것이다.
어느 날 그를 만났다.
당시 나는 코칭이란 것을 접하면서 그 분야에 관심이 커지던 상황에서 대학원에서 코칭을 부전공한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동갑인 우리는 나이에 비해 동안이었다. 둘 다 키가 커서 같이 다니면 보기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동종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혼자가 된 이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고 있는 사업을 혼자 책임져야 하고 또 혼자서는 뭘 하는 것도 쑥스럽고 해서 못하고 있던 차에 나를 만난 것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마주할 때 눈을 반짝이면서 경청하고 궁금한 것에 대하여 질문하고 다양한 것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 나를 보면서 그는 나와 함께라면 재밌게 인생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 했었나 보다. 그렇게 첫눈에 그는 나에게 반하였고 서울과 대구를 매주 오가면서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 초반에는 좋은 것만 보였다.
사람들의 잘 어울린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를 더 좋게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삶의 비전으로 갖고 있는 생각 - 노동의 가치를 올리는 선구자가 되겠다 - 을 들을 때는 감동이 올라왔다. 그 말 때문에 나는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했고 그의 비전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큰 비전을 갖고 있는 남자에 대한 감동은 차안대가 되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에 쓰인 차안대처럼 그가 가진 다른 약점들은 보이지 않게 하거나 보여도 무시하게끔 만들었다. 그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타입이었다. 미루는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그런 모습은 종종 짜증이 올라오게 만들었다.
평소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는 나이기에 공부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같이 공부하며 서로의 성장과 변화를 돕는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도덕경이니 노자, 장자를 이야기할 때 철학적인 사람이라 생각했고 오십이 넘어서 대학원을 가고 주말이면 마음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희망하던 관계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만큼 그가 자기 계발에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이 지루해지고 더 이상 나눌 발전적인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항상 나의 계획을 묻고 그 계획에 동참하려고 하지 자신의 계획은 말뿐 행동이 없었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Nothing이다.
같이 있으면서 어색한 시간들이 많아졌다.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시간들이 생겨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도 있었다.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서로가 알게 되었다. 계기가 필요한 순간 그 사건이 생겼지. 나는 내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를 위해 살 수는 없다. 어느 한쪽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건 잘못된 관계이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고 용납할 수 없었던 그의 집착이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감정 찌꺼기를 다 쏟아내었는지 어느 날 연락이 뚝 끊어졌다.
서로 닮았다고 생각했다.
혼자인 그와 역시 혼자인 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가족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것이고 나는 자발적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도 없고 자식과는 소원하고 남동생, 여동생과는 단절된 상태였기에 오랜 시간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이었다.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있는 그이기에 주변에 사람들이 머무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둘째 딸과 예비사위가 같이 살면서 나를 극진히 챙기기에 행복한 혼자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나를 좋아했을 수 있다. 싱글이지만 가족들과 충분한 사랑을 나누는 내가 부러웠을 수도 있다.
외로운 사람이기에 더 마음이 쓰인다.
의논할 상대 없이 사업을 혼자 책임지고, 혼자 밥을 먹고, 인스타그램에 넘치는 맛집과 멋진 여행지들을 보면서 부러워만 하고 그 넓은 집에 혼자 있는 날이면 더 외로워지겠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도 찾지 못하겠지. 어느 날 그에게서 온 문자를 보았다. 아직까지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부자가 될 거라고 적혀 있었다. 가슴이 멍해졌다.
우리 모두 외로운 영혼으로 태어났다.
외로운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본질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그것에 대해 왜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다. 다양한 경험과 그를 통한 성찰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 존재가 우리이다.
지금 외롭다면 그동안 외부로 향하던 관심을 나의 내면으로 돌려야 하는 순간이다. 외로움은 나를 찾는 시간이기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나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 외로움으로 연약해진 내면의 나를 살펴보고 돌보고 챙기면서 나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외롭다면 지금 잠시 쉬어보자.
눈을 감고 깊은 호흡을 반복해 보자. 들숨과 날숨의 흐름에 집중하면서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함과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그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맑아지면서 불안했던 가슴속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간다면 그동안 찾아 헤매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면 안에서 찾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멈춤의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바쁜 순간일수록 더 쉼을 하도록 하자. 잠깐의 멈춤과 내면 돌봄, 그리고 알아차림을 통해서 복잡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를 위로하자. 진리는 간결하다.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면 어쩜 그만큼의 모순이 그 안에 숨어있다는 증빙일 것이다.
어서 깨어나자. 우리의 삶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단순할지 모른다. 단순함을 깨닫는 순간 삶은 너무도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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