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흐름 속에 있다.
며칠 전 일이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스팸인가 싶어 잠시 망설이다 무심코 전화를 받았다. 조카딸이었다.
"아빠가 쓰러지셨어요."
순간, 심장 한 구석이 얼어붙었다. 서늘한 불안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자동적으로 병원 이름을 물었다. 의식은 또렷한데, 가슴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다행히 큰일은 면했다. MRI 결과, 막힌 것은 작은 혈관이라고 했다. 큰 혈관이 아니니,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한다. 좀 더디긴 해도 걷거나 움직일 수 있었다. 말은 약간 어눌하고, 입꼬리는 한쪽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의식은 명료했고, 가족도 알아보았다.
병실로 들어가 동생을 바라보았다. 칠십을 맞은 동생의 얼굴에는 여전히 어릴 적 장난기가 남아 있었다. 엊그제만 해도 활기차게 웃으면서 가족 모임에도 나왔었는데.....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스쳐 간다. 몸은 변하고, 표정은 서서히 굳어 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어린 시절의 모습이 남아 있다.
동생은 나보다 다섯 살 아래다. 어릴 적 나는 동생 손을 잡고 뒷산에 올라 도토리를 주워 담던 기억이 난다. 냇가에 앉아 나뭇잎을 띄우며 누가 멀리 보내나 겨루던 한나절도 있었다. 하루 종일을 굴렁쇠를 굴리며 놀기도 했다.
그런 동생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쪽 팔에는 링거 줄이 매달리고, 창밖에는 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건강하던 사람도, 활기차던 영혼도 어느 날 문득, 시간 앞에 멈춰 선다.
요즘 친구들과 만나면 대화 주제는 늘 건강 이야기다. 누구는 혈당 수치가 높아졌다 하고, 누구는 혈압약을 바꿨다고 한다. 한 친구는 전립선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며 불안해했고, 다른 친구는 작년부터 심장 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농담처럼 웃으며 넘기던 이야기였다. "야, 우리 이제 건강 얘기밖에 안 하냐?" 그러면서도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어딘가 애틋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점점 다가오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삶의 끝, 혹은 그것에 가까운 시간들.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한 친구는 말했다. "남은 시간, 가족한테 잘해야 해. 서운함을 남기면 안 돼."
그 말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 우리는 모두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너고 있다. 보이지 않는 강을 조심스레 건너고 있다.
동생의 병실을 나서며, 나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빛 구름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푸른 하늘이 엿보였다. 비는 아직 내리고 있었지만, 어딘가에서는 분명 햇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소중히 살자고.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잊지 말자고.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그 흐름 안에 있다. 어쩌면 모든 하루는 선물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ps ; 또 걷자. 걷는 것은 지금 여기 내가 '있음'입니다.
사진;작성자 앨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