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리다

그리고는 왔소이다.

by 랑세

아파트 쪽문을 나서서 큰길을 건너면 바닷가로 가는 길이 나온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나는 가끔 그 자리를 향해 걷는다. 이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평탄한 아스팔트 산책로, 다른 하나는 나지막한 동산을 올라가는 오솔길이다. 평지는 마음이 조용할 때 선택하고, 동산은 마음이 조금 무거울 때 오른다. 오늘은 후자였다. 오르막길을 따라 천천히 숨을 고르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든다. 몸을 움직이며 감정을 정리하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말했다. “다녀오리다.”


이 말은 오랜 세월의 습관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인사였겠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것이 되었다. 말투는 늘 다정하다. 다정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라기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정함이란 무엇일까. 드러나지 않지만 지켜주는 것, 나지막하지만 놓지 않는 것—그런 것이라 믿는다.


결혼한 지 47년이 되었다. 연애까지 합치면 50년이 훌쩍 넘는다. 그 시간 속에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계절들이 있었다.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던 시절, 나는 언제나 아내보다 먼저 출근했다. 아내는 종종 아이 곁을 떠나기 어려워했다. 감기라도 걸린 날이면,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곤 했다. 아이가 “가지 마” 하고 울기라도 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당신은 늘 잘 버텼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늘 먼저 나서야 했기에, 아내의 그런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뒤에 남는 이의 마음이 앞선 이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요즘은 그저 집을 나설 때, 이 짧은 인사가 더 조심스러워진다. “다녀오리다.”

단순한 말이지만, 그 안에 ‘잘 다녀오겠다’, ‘무사히 돌아오겠다’, ‘당신이 있어 내가 나설 수 있다’는 마음이 다 들어 있다. 내 나름대로는 깊은 마음이 들어있는 말이다.


얼마 전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에서 양관식이라는 인물이 나왔다. 아내에게 끊임없이 다정한 말을 쏟아내는 남자였다. 그가 아내 금명에게 건네는 말들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혼자 웃었다. 저렇게 살뜰한 남자도 있을까 싶고, 우리 세대에는 정말 드문 유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하고 둘이 앉아 드라마를 보며 웃기도 하고 눈물을 짓기도 했다. 우리 세대는 정말 드문 유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아내는 "어디서 저런 남자가 다 있대?" 하며 우습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 다정한 사람이네 하며 부러워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로맨티시스트는 아니다. 아니, 되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마음을 전해왔다고 믿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 일상 속의 작은 배려, 그리고 매일마다 산책길이든 외출이든 변함없이 건네는 “다녀오리다”—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다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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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먼바다 위로 햇살이 번진다. 그 빛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마음은 한결 가볍고, 어깨도 덜 무겁다. 집에 도착하면 다시 말하겠지. “왔소이다.”

그러면 아내는 말없이 문을 열어줄 것이다. 그 조용한 응답이 또 다른 '다정'이 된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이어왔다. 더구나 요즘은 특별한 일도, 극적인 날도 없다. 그저 같은 말과 같은 마음으로. 오늘도 외출하면서 나는 말했다. 다녀오리다. 그리고 내일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ps ; 매일 얼굴 마주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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