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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촉발 노란초 Nov 01. 2021

인간의 자유의지와 결정론(듄 스포일러 포함)

듄- 테넷-매트릭스 1-3편를 관통하는 어떤 것


듄- 테넷-매트릭스 1-3편를 관통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자유의지와 결정론 아닐까..?


철학도 잘 모르고 영화도 잘 모르고 물리도 잘 모르고

그냥 주억구구로 일하며 사유하는 인간인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적어봅니다.


저는 일단 이 세 가지 작품이 

[ 결정론적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 삶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라는 질문 제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에 대한 찬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매트릭스는 1편과 2~3편의 평가가 좀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인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1편은 결정론을 부수고 나온 자유의지에 대한 환희가 담겨 있다면 

2편은 그 자유의지라 믿었던 것조차 결정되어 있었다라는 한계를 보여주고 

3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행하는 것은 멋지거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가 있다 정도의 현실적인 결과를 들이밀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테넷도 마찬가지 인데요.


과거와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과연 있을 것이며 인간의 선택이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이 테넷을 관통하고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철학자인 앨빈 플랜팅가의 "신의 예지와 자유의지의 문제"라는 사고실험 내용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약 다음과 같은 조건문을 반사실적 조건문으로 바꿔보면 


조건문 : 

신이 예지하기에 내일 너는 아메리카노를 마실 것이다라고 한다면 

내일 당신은 분명히 아메리카노를 마실 것 입니다. 


반사실적 조건문 :

당신이 내일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는다면

오늘 신은 너는 내일 아메리카노를 마실 것이라고 예지하지 않을 것이다.


즉, 신의 예지에 따라 선택한게 아니라 개인의 선택에 따라 신이 예지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 반사실적 영향력을 신의 예지에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에 따른 운명이 결정되어 있더라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에 듄도 비슷한 부분이 발견됩니다


(여기서 부터는 듄의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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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폴은 예지를 담은 꿈이나 환각에 시달리는데 거기서 자신에게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여러 정보를 알려주었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과 생사를 둔 결투를 하게 됩니다. 그 때의 방향으로는 자신이 칼에 찔리고 죽었다 살아나야 하는 메시아적인 메타포를 수행해야 하지만.


자신이 메시아가 될 경우, 전 우주적인 대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폴은 그 결투에서 사람을 죽이고 이깁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자유의지에 대한 생각을 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그 때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합니다.


그리고 누누히 종종 말하지만 저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회피하는 것 같아서 별로라고 하는 꼰대이지요.


그 때에 그렇게 한 것도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한 것들의 결과도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매트릭스와 테넷과 듄이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매트릭트, 그리고 테넷에서 

결국 자유의지가 부여되는 이상 생기는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선택했습니다. 

그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는 환상에 불구할지라고 그것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생물체인 인간에게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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