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 the Win

승리는 과연 개인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가?

by randahlia

'승리'라는 기록은 선발투수의 실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인정받고 있)다. 10승 투수, 15승 투수, 그리고 20승 투수. 마치 투수의 기준점 처럼 보인다.

1870년대 미국, 그러니까 막 야구가 인기를 얻어가려던 시절에는 한 게임에 투수가 두명 등장하는게 당연시 되었다. 우리팀 한명, 상대팀 한명. 경기중에 투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부상을 입지 않는 이상 '완투'는 당연한 덕목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완투비율'은 96.4%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승리'와 '패배'는 도박꾼들에게 있어 선수의 실력을 알려주는 당연한 지표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나왔을때 얼마나 많이 이기는 지가 결국 오늘 내 수입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절에도 '승리'가 투수의 실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던 사람이 있었다. 아래는 1888년 스포팅 뉴스에서 발췌한 것이다.


"개인 기록에서 '승리'라는 것은 투수가 온 힘을 다해서 지려고 했지만, 우리팀 타자들이 더 많은 점수를 낸 경우의 결과가 되기도 한다."

승부 조작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승리'라는 기록이 절대 투수의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비꼬는 말이었다.

실제로 1913년 아메리칸 리그는 의장 밴 존슨의 결정하에 공식 기록에서 승-패를 생략했다.(이 제도는 1919년까지 지속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급진적인 움직임이었다.

1920년 다시 승-패가 공식기록으로 돌아온 후, 선발투수의 '완투율'은 50여년 전에 비해 뚝 떨어진 57%에 불과했다. 1930년대에는 43%로 떨어졌으며, 1960년대에는 25%이하로 떨어졌다. 선발투수 4명중 3명이 경기를 끝마치지 못했다. 그리고 2013년, 선발투수의 완투율은 단 2%에 불과하다. 게다가 선발투수는 경기당 평균 5.2이닝을 소화하고 있다.(야구는 여전히 9이닝짜리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당 5.2이닝, 즉 '승'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5이닝 이상의 투구)을 겨우겨우 채운 정도에 불과한 채로, '승리'라는 기록을 개인의 소유물로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은 자체로 가치가 있다기 보다, 우리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그 생명을 얻는 경우가 더 많다. '개인 기록'이란 것은 팀의 성적에서 해당 선수의 퍼포먼스만을 떼어놓고 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승리'라는 기록은 동료의 공격력, 수비력, 그리고 투수 자신의 그날 컨디션과 상대팀의 그날 공격력 등 연결되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선발투수의 퍼포먼스는 불펜 투수와는 별개의 것이지만, 불펜 투수의 퍼포먼스가 결국 선발 투수의 '승리'라는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당연히 여기고 있는 이 기록이, 어쩌면 19세기의 생존자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과연 이 '승리'라는 기록이 개인의 기록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Ahead of the Curve', Brian Kenny. Chapter 7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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