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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랜덤초이 Oct 14. 2024

소년의 징검다리

소년의 마을 앞에는 작은 개울이 흘렀다.

다른 마을로 나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숲길까지 가려면 반드시 이 작은 개울을 건너야만 했다.


평소에는 아이들도 쉽게 뛰어서 건널 만큼 개울의 폭과 깊이가 크지 않지만, 비가 오면 개울은 성인의 무릎 깊이까지 불어나기도 하고 폭도 한 번에 뛰어 건너기 힘든 만큼 넓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개울을 뛰어 건너기가 쉽지 않았고, 반드시 마을 맨 위쪽에 놓여있는 오래된 돌다리까지 걸어가서 개울을 건너야 했다.


소년이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기로 한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큰 비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돌다리까지 돌아가야 했지만 어느 정도의 비가 오면 그냥 징검다리를 밟고도 쉽게 개울을 건널 수 있어 보였다.

마침 소년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개울은 폭도 좁고 깊이도 얕아서 비가 와도 많이 안전할 것 같았다. 그래서 널찍한 돌 네댓 개만 옮겨 두어도 웬만하면 쉽게 개울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울에 큰 돌을 옮기는 소년을 본 촌장 어르신도 소년의 생각을 칭찬해 주었다.

좋은 아이디어이니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해 주셨다.

어르신께 인정받은 소년은 무거운 돌을 옮기면서도 그리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징검다리로 쓸만한 평평하고 적당한 부피를 가진 돌을 구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집 앞에서 두 개의 돌을 구해다 옮겼지만 의외로 적당한 모양의 돌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적당한 돌을 구하려 며칠이 지나는 동안이었다.


소년은 마을 사람들끼리 나누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촌장님이 소년에게 징검다리를 놓으라고 하셨다네. 얼마나 훌륭한 생각이신지 몰라.”

“그래 덕분에 비가 올 때마다 마을 위쪽으로 돌아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크게 줄 것 같아.”

“근데 걔(소년)는 왜 아직 징검다리를 안 놓고 있지?”

“그래 그게 뭐 어렵다고 게으름을 피우는 걸까?”

“좋은 일이면 빨리빨리 하는 게 사람들을 돕는 건데 말이야”


소년은 정확한 사실도 모르고 떠드는 사람들에게 섭섭했지만 촌장님은 사실을 알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적당한 돌을 찾아서 징검다리를 놓자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을 청년 한둘이 소년을 찾아와 참견하기 시작했다.

“야 네가 징검다리를 놓을 거라면서? 그거 기왕이면 청년회관 앞쪽 개울에다가 놔둬라”

“그래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곳이니 회관 앞 개울에 두는 게 제일 적당할 거야”


그러자 소년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쪽 개울은 폭이 좁고 유속이 빨라서 비가 오면 돌이 떠내려갈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청년들은 우격다짐이었다.

“그건 인마 네가 더 큰 돌을 갖다 두면 되잖아? 촌장님이 시키신 일인데 뭔 말이 많냐?”

“내가 아까 점심 먹으면서 촌장님한테 청년회관 앞쪽에 징검다리를 두겠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해 그냥”


소년은 난감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의 선의로 시작한 일이 무거운 숙제로 다가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스스로의 필요로 시작한 일이니 끝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컸다.


부녀회장도 큰 돌을 지게에 싣고 옮기는 소년을 불러 세워 이런저런 참견을 하기 시작했다.

“돌만 옮겨 놓으면 사람들이 징검다리 위치를 찾기 힘들 수 있으니까 꼭 표지판을 세워둬라”

“마을 개울가마다 어느 쪽으로 이동하면 징검다리가 있는지 알 수 있게 표시하려면 최소한 10군데는 표지판을 둬야 할 거야”


소년은 징검다리도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자꾸만 다른 일이 생기는 상황이 크게 부담스러웠다.

“아줌마 알겠는데요 일단은 징검다리를 마무리하고 사람들한테 부탁해서 같이 표지판을 세울게요”


하지만 부녀회장은 단호했다.

“아니 너는 그렇게 책임감이 없니? 기왕 일을 하고도 마무리가 부족해 욕먹으면 너도 억울하지 않아?"

“하는 김에 표지판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해라. 그게 촌장님도 바라는 일일 걸?”


너무 여러 사람들이 소년의 일에 이렇게 저렇게 참견하면서 소년은 불안한 마음이 커져갔다.

일의 순서를 생각해 보면 청년회관 앞 개울이 비가 와도 안전한 장소인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안전이 확인되면 그 장소에 맞는 크기의 돌을 구해야 하고, 그다음에 진짜로 돌을 옮겨 놓은 다음 마지막으로 표지판을 세워두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정작 징검다리를 놓는 일을 하는 건 소년 한 명인데, 참견하는 사람만 여럿인 상황이 된 것이었다.

처음 하루 이틀을 예상했던 일은 한주가 다 지나가도록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고, 징검다리가 생기지 않자 그 비난은 소년에게 집중되었다.


결국 사람들의 참견과 압박에 못 이긴 소년은 비가 오기를 기다려 안전을 체크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서둘러 아무런 큰 돌을 구해 청년회관 앞에 징검다리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뻔할 뿐이었다.

비가 심하게 온 어느 날 징검다리를 건너던 처자가 돌이 구르며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난 것이었다.

다행히 함께 있던 장정들이 뛰어들어 처자를 구해냈지만, 사고의 책임 소재는 오롯이 소년에게로 돌려졌다.


“돌다리가 있는데 괜한 징검다리를 둔 다고 할 때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았어”

“깊은 개울에 고정되지도 않을 돌을 두면 어떡해?”

“표지판을 두니 사람들이 그쪽으로 건너게 된 거잖아?”

“넌 비가 크게 오면 어떻게 될지 생각도 안 했니?”


정작 아무런 일에도 도움 주지 않고 참견만 하던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참견만 할 뿐이었다.


필요한 일을 찾아 스스로의 책임으로 안전하게 마무리하려던 소년은 

어느새 계획도 책임감도 없이 아무렇게나 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렇다 저렇다 책임질 마음 없이 참견만 하던 사람들은 이제 소년이 아닌 다른 사람을 찾아 또 참견을 한다.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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