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팔이와 욕받이

by 랜덤초이

예전에 개그맨 지상렬 씨가 예능 프로에 나와서 특유의 말재간으로 '안습 : 안구에 습기 찬다 ≒눈물 난다'이라는 말을 처음 썼을 때, 누가 저 단어를 따라 쓸까 싶었지만 어느새 '안습'이란 말은 상당기간 마치 표준어인가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따라 쓰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그전에는 없던 신조어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통용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안습'의 예처럼 누군가가 새로운 단어의 창조에 기여했다는 점이 비교적 잘 알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신조어의 경우 누가 먼저 썼는지 불분명하지만 어느새 익숙하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다른 인간관계에선 잘 쓰이지 않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광을 팔다'라는 말에서 파생한 '광팔이'가 그렇고 '욕받이'란 단어가 또 그렇다. 이런 독특한 용어가 당연스레 광범위하게 통용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해당 조직의 문화를 드러내는 징표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광팔이"는 예전에 용산전자상가에서 기술을 잘 모르는 손님에게 강압적 호객과 바가지를 일삼던 판매원들을 비하하여 지칭하던 "용팔이"란 단어와 어감이 비슷한데,
결국 광팔이로 지칭된 사람에 대한 비하의 의미를 가진 점은 유사하다.

의미인즉슨 어떤 일을 한 사람이 일의 실질적 성과에 비해 과장되게 생색을 내고, 그런 행동을 통해 자기의 업적을 과대 보상받는 사람을 일컫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 "욕받이"란 단어를 구글링 하면 나무 위키의 설명이 아래와 같이 검색된다.

'욕받이 : 욕을 대신 먹는 일. 또는 그러한 역할의 사람. 2012년 드라마화한 해를 품은 달에 등장한 설정인 액받이 무녀의 영향을 받아 예능 뉴스를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욕받이' 란 단어는 '광팔이'가 가진 비하의 의미보다는 부당하게 스스로의 책임이 없는 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자조적인 표현으로 사용하거나, 그런 사람을 보면서 약간의 연민이나 적어도 공감의 느낌을 담아 표현하는 단어이다.


결국 선명하게 대비되는 두 단어는 그 단어 자체로 사람들이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부조리와 모순을 웃프게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화되어 일본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한자와 나오키"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소설의 무대인 도쿄 중앙은행에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部下の手柄は上司のもの、上司の失敗は部下の責任. (부하의 공은 상사 , 상사의 실패는 부하 책임)"이란 말이 그것이다.


이 역시 짧은 댓구의 표현으로 조직의 불합리성과 부조리함을 대표하여,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명대사로 남게 되었지만, '광팔이'와 '욕받이'도 그 대칭적 정의를 통해 직장 내 갑과 을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하는 서글픈 단어이다.


생각해보면 참 짧은 단어 한두 개로도 직장생활에 대한 심득(心得)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일반인의 집단지성에 의해 통용되는 신조어가 가지는 사회적 역할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직장에서 누군가는 광팔이로 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욕받이로 살고 있다.

대다수의 순수한 누군가는 광팔이를 비하하고 욕받이를 연민하는 소극적 저항의 공감을 담아 이런 단어를 사용하지만, 언젠가는 광팔이와 욕받이라는 단어가 그 단어로서의 쓰임새를 잃어 그 용도를 다하게 되는 그런 시대가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