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CEO는 경영회의에서 그가 경험한 젊은 시절의 성공사례를 참석자들에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가 과장으로 미국 지사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었다.
연말 인사평가에서 평소 자신보다 기여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동료가 본인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당시의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냥 모른 척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자신은 지사장을 찾아가 항의했었다고 한다.
지사장에게 '내가 더 기여가 큰 데 왜 저 친구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느냐?'는 항의를 했고, 그 결과 평가 순위를 뒤바꿀 수는 없었기에 결국 둘 다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본인의 정당한 이의제기로 누구도 손해보지 않고 본인의 권리를 지켰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난 작은 의문이 생겼었다.
'정말로 클레임을 하면 평가 결과가 바뀔 수 있는 건가?', '혹시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주기 위해서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평가에 안 좋은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직장생활 속에서는 인사평가 TO(Table of Orgarnization)를 어겨서 평가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CEO의 설명이 액면 그대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가 이야기한 사례는 우리나라의 유명한 속담과 맞닿아 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자기주장을 하고 보채는 사람을 더 챙겨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또 비슷한 이야기는 법률과 관계된 오랜 법언(法言) 중에도 존재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이는 적극적으로 자기의 권리를 주장해야 법의 판단을 받아 스스로의 법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잠자코 있다가 소멸시효가 지나가면 법으로 보장된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법이다.
한편으론 이런 말들이 적극적인 자기주장과 권리 행사를 독려하는 말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은 무리하거나 무책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몰라서 잠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너는 왜 울지 않았니?'라고 묻는다던가 '그건 네가 법적 절차를 거쳐 요구하면 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왜 가만히 있었어?'라고 한다는 게 도통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아픈 사람의 상처를 후비는 가해의 일종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불공평한 상황이나 불평등한 경우에도 묵묵히 참고 견뎌내는 사람들
그리고, 법과 절차를 몰라서 스스로를 구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결과적인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보여서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누구보다 배가 고프지만 너무 굶어서 울기조차 힘든 아이에게 '너는 안 울었잖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장애로 인해 필요한 절차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
또는 법지식을 몰라서 자신의 권리를 놓치는 사람에게 '너는 왜 권리 위에서 잠을 잔 거야'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너도 울었어야지' 하는 얘기나 '네가 권리 위에서 잠잤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건 약자가 아닌 강자 또는 관리자의 논리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결국은 어떤 이유이든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해서 남겨진 잉여의 이익을
울고 보챈 사람들끼리만 나눠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목소리 크고 자기주장 강한 사람들에게만 사회적 혜택이 집중되는 사회가 되어 간다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안정성은 점점 위협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울지 않아도 권리 주장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도 적정한 관심과 배려는 반드시 주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CEO의 성공 경험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보다 아름다운 공유 사례였지 않을까 싶다.
'OOO씨도 저만큼이나 열심히 일했으니 함께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