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오늘은 막내가 수능시험을 보는 날이다.
아침에 아이를 수험장에 태워다 주고 오는 길에 문득 오래전 내가 대입학력고사를 보던 날의 기억이 겹쳐졌다.
요즘은 집 근처의 고등학교에 임의배정되어 시험을 치게 되지만, 내가 대입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미리 진학하려는 학교와 학과를 지원하고 그 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르는 선지원 후시험의 입시 방식이었다.
그래서 지역에서 서울로 진학하려는 학생들의 경우라면 미리 지원한 학교 근처에 여관방을 잡거나 친척집에서 자게 되는 경우가 흔했다.
다행히 나는 서울에 살며 서울 안의 학교를 지원했기에 그냥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이동을 하면 되는 정도였다.
그래도 당시는 12월 중순 이후에 시험이 진행되어서 지금은 퇴색된 '입시한파'라는 단어가 아주 실감 나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았고, 그래서 학력고사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설 때는 매우 춥고 어두운 길을 걸어야 했다.
시험을 보러 가는 새벽길은 아버지가 함께 하셨다.
다 큰 남학생이 시험칠 학교를 찾아가지 못할 일이 없는데도 부모의 마음에는 아이가 늘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늘 바빴던 아버지와는 평소 그리 많은 대화를 하는 사이가 아니었고, 시험 당일 이동 중에도 어떤 얘기를 나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모든 과목의 시험을 마치고 시험을 본 단과대 건물 로비로 내려올 때, 그곳은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학부형들로 가득했다. 우연히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내가 문을 나서려 그분들 앞으로 다가갔을 때 학부형분들은 수험생이 지나갈 통로를 만들어주며 박수로 학생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다.
그 많은 부모님들이 그게 누구의 자식이건 수고한 수험생들 하나하나에게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는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그 사람들의 통로 중간쯤에서 아버지가 아직도 추운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자 뭉클한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나를 데려다주고 나서 출근하셨을 거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의자도 없는 그 추운 로비에서 예닐곱 시간을 기다리셨던 것이다.
수고했다고 얘기해 주시는 아버지께 무슨 얘길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 역시 그날 오랜 시간 난로도 없는 추운 공간에 서서 기다리느라 고생을 하셨을 텐데 그때는 그런 걸 살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면 자식들은 부모님께 정말 많은 것을 받지만 정작 거꾸로 해드리는 게 별로 없구나 생각에 죄송할 뿐이다.
작년에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이 모두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거동이 어려워지며 병원에 계시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생활 속에서 이런 사소한 추억이 생각날 때면 갑자기 먹먹한 마음이 들고는 한다,
부모자식 간에는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지만 그런 단어가 있다고 해서 내가 받고 살아온 감사한 일들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선 안될 일이다.
또 한편으로 나는 과연 나의 아이들에게 우리 부모님 같은 헌신적인 내리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하면 부족하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또 커진다.
자식 노릇도 부모 노릇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음을 느끼면서 일단은 당장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해봐야겠다.
오늘은 시험을 마치고 나올 막내를 기다려 교문 앞에서부터 그간의 수고를 위로해 줘야겠다.
어느새 아빠만큼 키가 커버린 아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난 내가 해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 마음을 전해봐야겠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