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파킨슨병을 앓으셨지만 어느 정도 관리가 되어왔기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건 생각지 못한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작년 여름 이후,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에 계신 동안 아버지는 늘 어머니 다음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큰 병을 겪고 가족과 떨어져 오랜 병원 생활을 하고 계셨기에,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더 애처롭게 느껴졌고 상대적으로 잘 걷고 식사도 잘하시던 아버지는 늘 어머니 다음이었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를 챙기라는 말씀이 먼저였다.
본인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며 과자 한 봉지 사 오라는 말씀도 없으시면서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필요한 일에는 적극적이셨다.
늘어나는 병원비와 간병비 부담을 자식들에게 지우지 않으시려고 살던 집을 팔 때도 당당하셨고, 수십 년을 살았던 집에서 나오시면서도 자식들이 걱정할까 봐 오히려 후련하다고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파킨슨병 때문에 처방받은 신경과 약물들이 몸에 맞지 않아 고생하시면서 체중이 줄었고,
걷는 것을 점점 힘들어하셨지만 그래도 다시 회복하셔서 함께 어머니를 보러 면회 갈 수 있을 거란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응급실로 가셔서 폐렴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의사들조차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동생과 함께 아버지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지만,
그때는 이미 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긴 어려운 상황이었다.
'감사하다'라고 '수고하셨다'라고 '사랑한다'라고 아무리 얘기드려도 아버지의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응급실에 가신 지 그렇게 하루 만에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갑작스레 황망해진 마음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장례를 위한 행정처리와 가족 친지, 친구분들에게 연락하여 상을 치르는 동안은 다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듯 정신없는 삼일장이 지나갈 무렵, 문득 아쉬운 사실이 생각났다.
회복 중인 어머니를 위해서는 자주 사진도 찍어드리고 동영상도 남기고 있었는데, 정작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는 사진도 동영상도 마땅히 준비해 둔 게 없었다.
영정사진으로 쓸 사진도 마땅치 않아 여러 스냅사진을 뒤지다가 집사람이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 점심식사를 할 때 찍어드렸던 밝은 표정의 사진을 발견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또 아버지 목소리를 들어보려 해도 이제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왔다.
그런데 발인을 마치고 가족들과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딸아이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3년 전에 대학 수업 과제로 할아버지를 인터뷰한 음성 파일이 남아있단 얘기였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집합금지로 부모님 댁을 자주 찾지 못하던 시절에 딸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 녹음한 내용이었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 파일에는 아버지의 일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어떤 학창 생활을 보냈고 가족관계와 직장생활은 어땠는지, 결혼생활과 자식들에 대한 생각까지가 망라된 내용의 인터뷰였다.
큰 딸의 질문 중간중간에 듣고 있던 어머니가 끼어들어 부모님 두 분이 티격태격하시는 내용조차
자식들 앞에서 투덕대시던 늘 같은 레퍼토리의 얘기였기에...
대화를 듣는 동안 또다시 울컥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80분쯤 되는 인터뷰 음성을 듣고 나니 이제야 아버지가 어떤 소망을 갖고 노년을 보내셨는지도 알 수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어하시며 대가족이 함께 모여 의지하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으셨단 것을... 자식 세대에게 강요하기 힘들겠지만 함께 살며 서로 화목하게 생활하면 좋겠단 소박한 말씀이 아프게 다가왔다.
풍수지탄이란 말의 유래가 된 옛 글은 학창 시절부터 익히 잘 알고 있었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
하지만, 잘 알고 그런 한을 남기지 않으려 했음에도 아버지가 떠나신 지금 남는 건 여전히 후회와 아쉬움뿐이다.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자주 전화했으면 어땠을까...
자주 연락하던 살가운 자식이라며 내게 기대하셨던 아버지에게 혹시 실망시켜 드린 게 있진 않은지...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담아 복잡한 개인적 감정을 글로 남긴다.
누구라도 우연히 이 글을 본다면 각자의 부모님께 전화 한 통화, 안부 문자 한 번이라도 드릴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부모님과의 이별은 정말 급작스럽고... 아쉬움은 하해와 같다는 것을 미리 알고 행동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