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상사로 모시던 한 임원이 소속 팀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신들도 이제 조직의 리더다. 매일 정신없이 일만 하지 말고, 의도적으로라도 여유 시간을 만들어라. 사람이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달리면 결국 관성대로 일하게 된다. 시간을 두고 깊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야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성과를 낼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당시 그 말을 듣던 내 솔직한 심정은 ‘참 한가한 소리 하신다’였다.
당장 눈앞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한 팀장들에게 여유라니. 임원이 모르는 현장의 급박한 일들이 얼마나 산더미 같은데 저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나 싶어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나마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그땐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몸을 뉘어 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생각하고 고민할 겨를 따위는 사치였다.
하지만 조직 생활의 연차가 쌓이고 나 역시 책임져야 할 영역이 넓어질수록, 당시 그분의 조언은 뜬구름 잡는 소리가 아니라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치열한 생존 전략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관성은 무서운 힘이다.
하던 대로 하면 당장은 편하고 큰 실패도 없다.
그러나 관성에 몸을 맡긴 조직은 서서히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고 도태된다.
리더가 멈춰 서서 ‘이 길이 맞는가’, ‘더 나은 방법은 없는가’를 스스로 묻지 않으면 팀 전체가 목적지 없는 전력 질주를 하게 된다.
깊은 숙고 끝에 나오는 통찰만이 낡은 관성을 깨뜨리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는 사실을,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동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리를 깨달아갈 즈음, 주변에서 마주하는 리더들의 모습은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그들은 더 바빠 보이지만, 정작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은 비례해서 줄어든 것 같다.
요즘 경영진의 스케줄 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30분 단위의 회의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하루 종일 회의실을 전전하며 보고를 받지만, 정작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리더가 해당 사안에 대해 깊이 있게 숙고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스로 고민해 보지 않은 리더는 실무자의 아이디어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보다 지엽적인 부분에 매몰된다.
날카로운 비판이라는 명목하에 쏟아내는 말들은 대개 ‘딴지’에 가깝고, 대안 없는 지적은 현장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스스로 치열하게 고민해 본 적 없는 경영진이 현장의 고뇌를 제대로 이해할 리 만무하다.
설령 백번 양보해 이해는 못 하더라도, 최소한 현장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대안이라도 제시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요원하다.
숙고의 여유가 사라진 자리에는 권위적인 태도와 공허한 수사만이 남는다.
밑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적당히 비틀어 자기 목소리인 양 내는 것으론 복잡한 비즈니스 현장의 난제를 풀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그고서라도 자신만의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리더, 남의 생각을 가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본질을 파고드는 리더가 절실하다.
과거 상사가 말했던 ‘여유’는 결코 게으름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성에 저항하기 위한 고독한 투쟁이었고, 조직의 미래를 위해 리더가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이었다.
오늘도 의미 없는 회의와 보고서 더미에 파묻혀 정작 ‘생각’할 시간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의 리더들에게, 그 옛날의 ‘한가한 조언’을 다시금 건네고 싶다.
“지금 당신들은 바쁘게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관성에 몸을 맡긴 채 생각하기를 멈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