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연극배우’라는 표현은 언제나 두 갈래의 상반된 풍경으로 다가온다.
같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투영하는 빛과 그림자는 놀라울 정도로 극명하게 대비된다.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순수한 열정의 전율이다.
화려한 카메라 렌즈와 자극적인 편집 뒤에 숨는 대신, 먼지 날리는 연습실과 관객의 거친 숨소리가 직조하는 소극장을 선택한 이들이다.
영화나 TV에 출연하는 배우들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그들은 오직 무대 위에서만 허락되는 찰나의 진실을 위해 자신을 깎아낸다.
때로는 이미 상업적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 배우조차 스스로를 단련하고 초심을 회복하기 위해 연극 무대로 회귀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연극은 타협하지 않는 이상이자, 인간 본질을 찾아가는 치열한 수행의 과정이다.
그래서 이때의 연극 배우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고행을 자처하는 ‘진짜’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단어의 이면을 들춰보면 씁쓸한 가식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자신의 진짜 삶을 살지 못하고, 누군가 정교하게 짜놓은 각본대로만 움직이는 가짜 인생을 비유할 때도 이 단어는 빈번히 소환된다.
특히 조직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높은 직책을 맡은 이들을 대할 때면, 나는 그들에게서 기이한 연극배우의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
입으로는 정의와 혁신을 가르치고 공정을 읊조리지만, 정작 그들의 실제 삶은 대본과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그들은 현장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식사나 영화 관람 같은 개인적 취미를 회사 업무인 양 연기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보이는 모습만 철저히 계산된 연기로 채우는 그들의 삶은 일종의 기만이다.
누가 무엇 때문에 설계한 배경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잠시 내려둔 채 타인의 장단에 몸을 맡긴다.
오직 윗사람의 의중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조종당하며, 자신의 영혼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복무할 뿐이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남의 대사를 읊조리며 살아가는 그들 역시, 또 다른 비극적 의미에서의 연극배우라 할 만하다.
결국 단어 자체에는 아무런 속성도, 선악의 평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단어가 상황에 따라 이토록 다르게 읽히는 것은, 결국 그 단어를 몸소 증명해 내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어는 그저 거울처럼 그들을 비출 뿐이다.
다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인생을 걸고 무대 위에서 자신을 태우는 진짜 예술가들을 위해서라도 이 단어가 오염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적어도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비겁하게 살아가는 연기자들이, ‘연극배우 같다’는 말을 부끄러운 조롱의 수식어로 전락시키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무대 위의 고결한 땀방울이 무대 아래의 비루한 가식 때문에 폄훼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