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Task Force)의 그늘

by 랜덤초이


기업은 효율을 위해 칸막이를 친다.

전문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능별로 나누고, 시장 대응을 위해 상품별로 쪼갠다.

이 정교한 설계도 위에서 각 조직은 각자의 R&R(역할과 책임)이라는 성벽을 쌓는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설계도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회색 지대’가 반드시 생겨나기 마련이다.


'회색 지대'가 성공의 기회라면 서로 깃발을 꽂으려 들겠지만, 만약 그것이 골치 아픈 ‘문제’라면 상황은 반전된다.

어느 성벽 안에도 속하지 못한 유령 같은 문제들은 경계선 사이에서 몸집을 불린다. 방치된 문제는 임계점을 넘고, 마침내 조직 전체의 위기로 번진다.


이때 경영진이 꺼내 드는 가장 익숙하고도 손쉬운 전술이 바로 TF(Task Force)다.

"특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별 기동대"라는 거창한 명분과 함께.



TF가 선포되는 순간, 실무 조직에는 냉소가 흐른다.

TF는 본질적으로 조직의 혈관과 근육을 건드리는 ‘외과적 수술’이다. 하지만 이 수술은 시작 전부터 난항을 겪는다.

각 부서는 유능한 인재를 TF에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TF란 '우리 팀의 소중한 자원을 빼앗아가는 블랙홀'이자, 결국 '우리 일을 감시할 또 다른 시어머니'를 만드는 과정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결국 TF는 각 조직에서 '지금 당장 없어도 큰 지장 없는' 인원들로 채워지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밝은 이들의 집합소가 되기도 한다.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라"는 특명을 받았지만, 정작 구성원들은 원대 복귀 이후의 안위나 소속 부서의 이익을 먼저 계산해야 하는 모순에 처한다.



TF의 첫행보는 대개 '원인 분석'이다.

사실 이는 대단한 통찰이 필요해서라기보다, 당장의 책임을 유예하기 위한 훌륭한 명분이 된다.

"우리는 지금 진지하게 원인을 파악 중입니다"라는 보고는 윗선을 안심시키고 시간을 버는 마법의 주문이다.


분석의 끝은 늘 비슷하다.

"이 문제는 기존 조직 체계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결국 TF는 해산하는 대신 '신설 조직'이라는 영구적인 간판을 단다.

책임질 조직을 만들었으니 이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해결이 아니라, 단지 책임의 소재를 서류상으로 이전한 것에 불과하다.



새로 탄생한 조직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실행 근육'이 없다.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 택하는 전략은 결국 타 부서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실무 조직 입장에서는 일은 그대로인데, 보고해야 할 대상만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이른바 '시어머니'가 늘어나는 형국이다.


이 관료화된 조직은 성과를 증명해야 하기에 '계량화하기 쉬운 과제'에 집착한다.

진짜 문제는 뿌리 깊은 프로세스의 오류나 잘못된 의사결정 구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건드리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신 그들은 눈에 잘 띄는 지표, 보여주기식 캠페인, 수치로 환산되는 단기 과제들을 쏟아낸다.

지표는 우상향 하지만 현장의 고통은 깊어지고, 진짜 암세포는 그 아래서 조용히 전이된다.


이 루틴이 반복되는 기업에는 '관리의 층층시하(層層侍下)'가 쌓인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문제를 관리한다는 명목의 조직들만 비대해진다.

실무자들은 진짜 일보다 보고서를 꾸미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조직의 유연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TF는 결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때로는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기존 프로세스의 매듭을 풀고 의사결정의 막힌 혈을 뚫어주는 '내과적 처방'이 훨씬 절실할 때가 많다.


만약 당신 주변에서 "문제만 생기면 TF를 만들고, 그 끝에 관리 조직이 하나 더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은 기업이 서서히 질식하고 있다는 위험 신호다.


성장이 멈춘 자리에는 늘 숨 막히는 관리의 그림자만이 길게 드리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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