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Walker)

by 랜덤초이

영화 《분노의 질주: Furious 7》의 마지막 장면,

위즈 칼리파와 찰리 푸스의 'See You Again'이 흐르는 가운데 두 대의 차량이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진다.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배우 폴 워커를 향한 이 아름다운 작별 인사는,

영화적 연출을 넘어 동료들과 팬들이 그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따뜻한 추모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영화 속 길 위에서 그를 떠나보냈지만, 다시 만나자는 제목의 음악이 흐를 때면 언제 어디서라도 폴 워커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영화 속 감동과 여운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깊고 뜨겁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워커(Walker)'가 존재한다.

바로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의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월턴 워커(Walton H. Walker) 미 8군 사령관이다.


월턴 워커 장군은 풍전등화와 같았던 이 땅의 운명을 지켜낸 전쟁 영웅이었다.

6.25 전쟁 당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낙동강 유역까지 밀리는 군사적 수세 속에서, 워커 장군은 미 8군 사령관이자 UN군 지상군 사령관으로서 "사수하느냐, 아니면 죽느냐(Stand or Die)"라는 결연한 의지로 최후의 전선을 지켜낸 인물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친 베테랑 군인이었던 그는 머나먼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마주한 백척간두의 위기를 기적 같은 반격의 교두보로 바꿔놓았다. 하지만 그는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져들던 1950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전방 부대를 시찰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사실 우리가 '워커힐'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당시에는 실리적인 목적도 분명히 존재했다.

주한미군의 국내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그들의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했고, 미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지휘관이었던 그의 이름을 빌려온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가장 어려울 때 제일 먼저 달려와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고, 안타깝게 이 땅에서 순직한 그를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고자 했던 진심이 서려 있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을 빚진 채 남겨진 사람들의 마땅한 도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 전쟁은 인터넷 너머 타국의 참혹한 영상이나 게임 속 그래픽으로 소비되곤 한다.

미디어를 통해 타자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지금 누리는 평화가 어떤 이들의 피와 눈물 위에서 세워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뎌져 가고 있다.


국방홍보원의 <역전다방>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마주하는 역사의 이면에는,

단순히 승패를 가르는 전략뿐만 아니라 '무엇을 지키기 위해 누가 어떻게 목숨을 걸었는가'라는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함께 있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전쟁 자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평화는 인류가 지향해야 할 최고 가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당위가 '대신 무엇이든 포기해도 좋다'는 패배주의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을 피하자'는 커다란 당위 아래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이 지속되기도 한다.


우리가 오늘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낙동강 전선의 차가운 흙바닥에서,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고지 위에서 자신의 생(生)을 던진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유급의 선물'이다.


폴 워커를 추모하며 '다시 만날 날(See You Again)'을 기약하듯,

우리도 월턴 워커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를 기억의 광장으로 불러내야 한다.

세대가 바뀌고 강산이 변해도 잊지 말아야 할 역사가 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건네는 엄중한 유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죽음은 생명이 다하는 순간이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는 순간이다.

우리는 이 땅을 지켜낸 사람들의 희생에 응답해야 한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되새기며,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조용히 떠올려본다.


당신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반드시 기억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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