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때로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판타지를 보여주며 우리를 위로한다.
특히 우리가 상상 속에서만 그려보던 정의 구현이 스크린 위에 펼쳐질 때, 관객은 가슴 깊은 곳에 맺혀 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나에게 그 짜릿하고도 서글픈 해방감을 선사한 최고의 영화 중 하나가 <해바라기>다.
주인공 오태식은 과거의 과오를 씻고 새사람으로 살려 노력하지만, 비정한 무리들은 그를 끝내 극단까지 몰아넣는다.
결국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며 술병을 들고 적진에 걸어 들어가는 오태식의 모습은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하다.
비아냥거리는 악당의 물음에 오태식이 짓누르던 슬픔을 터뜨리며 답하는 대사는 지금 봐도 전율이 인다.
“나다, 이 씹새끼야…!”
이어지는 절규는 보는 이의 심장을 관통한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씨발새끼들아…!”
평소 욕설을 하지 않는 나에게도 오태식의 욕은 충분히 공감 가는 외침이었다.
사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나 역시 저렇게 시원하게 욕을 퍼붓고 싶다는 충동이 일 때가 많다.
특히 회사를 망치고도 당당한 경영자들,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고 책임을 전가하며 부당한 이익을 독차지하려는 이들을 보면 욕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다.
만약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그들 앞에 설 수 있다면, 나는 오태식처럼 시원하게 이렇게 일갈하고 싶다.
“왜 그따위로 일하고 사냐, 이 씹새끼들아!”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뜨거운 감정을 삼키며 인내할 뿐이다.
영화 <해바라기>가 수십 년간 사랑받는 이유는, 그렇게 참고 참아야만 했던 수많은 이들이 오태식의 폭발적인 복수를 통해 대리 만족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족 같지만, 영화 속 오태식은 막장까지 몰린 상황에서도 양심을 가진 사람에겐 퇴로를 열어주는 너그러움을 보여주었다.
“병진이 형, 나가. 뒤지기 싫으면.”
그래서 난 오태식에게 부러운 부분도 한가지는 있다.
용서해주고 싶은 사람이 그래도 한 명은 있었구나 싶어서 말이다.
거친 대사가 폭발시키는 카타르시스의 힘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이끌며 시간이 흘러도 오래도록 기억되는 명대사가 되었다.
비록 현실의 삶은 여전히 인내의 연속일지라도,
내 마음속엔 언제나 ‘해바라기’ 영화 속 나이트클럽에서의 거친 욕설을 폭발시킬 클라이막스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