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所信)과 배신(背信)

by 랜덤초이


회사의 사업 기반이 내수에 치중되어 있는지라 업무 상 해외출장을 갈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도 간간이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기는 했었고, 어쩌다 보니 한번 방문했던 도시를 다시 방문할 기회도 한두 번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가 독일 베를린이다.

처음엔 "ESOMAR(European Society for Opinion and Marketing Research)"라는 여론 및 마케팅 조사 협회가 주최하는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고, 두번째는 "IFA"라는 국제 가전박람회 참석을 위해서였다.

두 번의 출장 모두 업무협의 상대와의 현안을 가진 출장이기보다는 열심히 일한 직원에게 주어지는 포상 성격을 가진 출장이었기에 부담없이 홀가분한 기분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비록 먼 나라의 낯선 도시이지만 두 번째로 출장을 갔을 때는 주요한 길과 건물이 눈에 익어서인지 처음 갔을 때보다 익숙한 느낌으로 편안하게 도시를 살펴볼 수 있었다.

숙소에서 IFA 전시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여기저기 길거리의 보도 블록 사이에 반짝이는 황금빛 동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별 관심 없이 지나쳐갔지만 길을 걷는 동안 자주 눈에 뜨이다 보니 고개를 숙여 동판에 써진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동판에는 누군가의 이름, 날짜와 함께 독일어로 짧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독일어를 할 줄 모르지만 구글 번역의 힘을 빌려 내용을 확인해보니 누가 이곳에 살았었고 언제 수용소로 이송되어 어디서 생을 마감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내가 본 동판은 "Stolperstein"이라고 하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소수자 차별 역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를 이어오고 있는 예술프로젝트였다. (’19년 말까지 독일과 이웃 나라에 이미 75천 개의 stolperstein 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베를린에서 처음 동판의 내용을 알게 되고 놀랐던 점은 그런 동판이 한두 개가 아니라 거리의 이곳저곳에 너무 많아서였고, 다음으로 놀란 건 소녀상을 두고 일본과 갈등 중인 우리나라 상황과 달리 독일은 그들이 가진 가해의 역사를 이렇게 까지나 드러내 놓고 생활 속에서 기억하는구나 하는 점이었다.


IFA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베를린 중심부의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들렀다. 출장 중 시간이 남으면 여기저기 가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Stolperstein을 보면서 가졌던 묘한 감정 때문에 유대인 대학살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던 이유이다.


그곳에 전시되어 있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남긴 짧은 유언의 글들에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와 원망보다 생사를 모르는 다른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절망의 한가운데서 가족과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그들의 글을 읽고 있자니 가슴에 납덩이가 올라온 듯 무거운 느낌과 함께 희생자의 애끓는 슬픔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 출장에서 귀국한 후, 나는 한동안 2차 대전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생겨 여러 가지 글들을 읽다가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惡)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집단 수용소로 수송하는 일을 담당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이라는 전범의 재판 과정을 취재한 책에서 ‘악(惡)의 평범성’이란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惡)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어찌보면 평범해 보이는 사람(≒아돌프 아이히만)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대학살의 과정에 참여하는 일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개인으로서 스스로 생각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는다면 집단적 체제와 목적 안에서 심각하게 악한 일들까지도 거부감 없이 쉽게 용납하고 실행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작자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집단학살과 같은 끔찍한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이 집단의 내부에서 스스로 고민하여 판단하는 과정없이 옳지 않은 일에 동참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군복무를 할 때 그 안에서는 일정한 가혹행위와 구타가 너무나도 일반적이었고 사회에서 유순했던 친구들마저 군대 안에서는 후임에게 얼차려를 시키거나 구타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뉴스 토론 프로그램에서도 여야의 입장을 대변하는 패널들은 집단적 이해관계 때문에 상대편이 제기하는 상식적인 이견도 인정하지 않고 자기 진영의 주장만 내세우며 싸울 듯 논쟁하고는 한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체벌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비근하게는 회사조직 내부에서도 상사의 지시에 대해 그게 진짜로 고객과 회사를 위한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 없이 실행을 강요 당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실행하는 일에 대해서 개인 스스로 혼자 판단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한 행위의 결과는 때로는 따돌림이나 심한 질책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심하면 직업을 잃는 일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전쟁이나 혁명이 진행되는 시기에 집단적 이념과 목적이나 행동방향에 대해 다른 생각과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조직 안에서 소신을 갖고 행동하는 건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어떤 이는 그런 경우 소속 집단을 벗어나서 소신을 밝히는게 옳은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소수에 대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로써 소수에 가해지는 폭력성은 절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동시에 불합리하기까지 하다.


만약에 아이히만이라는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의 불의와 악함을 깨닫고 임무를 포기했으면 홀로코스트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 가만히 생각해보면 꼭 그랬을거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조직에서 누군가 사라져도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건 항상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니까 불의와 악함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저항의 의미로 조직을 떠나버리기 보다는 처한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과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극적 저항이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비록 자신이 소신으로 인해 다수의 핍박을 받게 되고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못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조직 내에서 소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배신자라고 매도 당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면, 그 사람의 편에서 싸우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그 사람이 외롭지 않게 지켜주는 정도라도 할 수 있어야 그나마 우리가 지나간 역사에서 뭐라도 배운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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