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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an 28. 2024

포춘쿠키

 빈, 그런 말을 오랜만에 들었다. 단순하다, 명료하다, 그런 말을 들은 지도 오래됐다. 얼마나 복잡하게 살고들 있는지. 단순하게 살자고 맘먹은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눈만 돌리면 땅이 꺼질 듯하다.


 가족끼리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앉았다. 잠깐 쉬면 되는데, 그게 어렵다. 순간에 집중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거 하다 저거 생각, 저거 하다 이거 생각. 밥을 먹다 경력 생각을 하고, 경력 생각을 하다 미뤄놨던 글, 그림 작업 생각이 난다. 차라리 받아들이는 게 나은 건지.



 이 복잡한 날, 예전 친구를 만났다. 대뜸 황동규 시인의 말을 읽어보란다. ‘시를 쓰다가 시가 나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한밤중에 깨어 볼펜을 들 때가 특히 그렇다, 이 문장이 너무 좋았어요.‘ 사돈에 팔촌까지 호구조사 없는 순수한 대화가 그나마도 허름한 무장을 벗게 한다. 자연스럽게 모두 배우를 꿈꾸게 되지 않냐며 나더러 하고 싶은 것 있으면 그것부터 하라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힘든 시기 우연히 알게 된 친구들, 낯선 이들이 가끔 더 편한 이유는 뭘까. 맘껏 숨겨도 돼서인지, 맘껏 드러내도 돼서인지.



 근엔 과외했던 학생과 9년 만에 만났다. 그사이 그는 졸업장이 두 개, 전국을 전전했고, 얼마 전엔 유명 아이돌 뮤직비디오 무대감독을 했더랬다.


 너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나중에 하겠단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하지 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어떤 영화였다. 모든 시작은 불시착이고, 일단은 지금이 좋다고. 9년 지난 그에게 나는 배웠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그의 모습에 조금은 위축도 됐다. 뻔뻔하리만치 능숙하게 사는 척도 얼마 안 가 들통날 듯싶다.



 끔씩 오래된, 아니 거의 잊고 지낸 인연들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포춘쿠키 같다. 처음엔 속을 먼저 알고 싶다가, 속에 있던 말을 보고 난 후엔 자꾸 생각난다. 나 들으라고 미리 준비한 말들도 아니련만.


 Y가 재밌는 방법을 소개해 줬다. ‘너무 고민되고 힘들 땐, 재생목록을 자기 나이만큼 막 올려서 손가락으로 딱 찍어 보세요, 그리고 가사를 들어 보세요. 아니면 네이버에 포춘쿠키를 검색하면 직접 까 볼 수도 있고요.‘ 맞아, 가끔은 운이 나를 데려가게 내버려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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