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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n 26. 2020

입학 논술

 대학별 입학 논술고사뿐만 아니라 각종 입사 지원서, 자기소개서만 모아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참 건강한 사회다. 몸과 마음에 열정이 넘치고 바르고 건강한 청년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나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ROTC에 지원할 때는 평소에 입 밖으로 꺼내보지도 않았던 ‘애국심, 자주국방, 상무정신’ 같은 단어들을 늘어놨었다. 교사 채용 면접에서는 맹자의 군자삼락까지 거론하면서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즐거움을 감히 논했었다. 하룻강아지다.


 사회 다른 곳을 가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오죽하면 의대생들이 입학 당시엔 의학계 선조 히포크라테스의 격언을 논하며 뜨거운 비전을 앞세우다가 세부 전공을 결정할 때는 슬쩍 발을 빼면서 상대적으로 근무시간이 유연하고 벌이가 좋은 피부과, 성형외과 등을 선택한다는 풍문이 사회까지 흘러나오겠는가.


 이제는 내 본모습과도 구별하기도 힘들고, 구별되지도 않는 사무적 마음가짐이 각자 내면의 목소리를 못듣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 또한 너무나 상투화되어 사회에 별로 울림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이렇게 상투화되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까지 상투화되었다. 상투화의 상투화다.


 말하자면, 입학 논술 시험 때의 이상주의는 이제 없어지거나 물러졌고, 그 자리에는 적당히 눈치 보면서 사회에 맞추어 살아가자는 마음만 남아있을 뿐이다. ‘사회가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은 최고의 위안이 된다. 아니 어쩌면 입학 논술 때의 이상주의가 애초에 허구일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저주가 낳은 가식이다.


 한 번 사는 인생에서 평생 무엇을 고민하며 살 것인가는 이제 더 이상 진지한 인생의 고민거리가 아닌, ‘딴생각’ 일 뿐이다.


ⓒ 사진 저작권, 신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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