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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일 Jul 05. 2020

다 원조야

 감자탕 골목, 족발 골목, 장어구이 골목을 누비다 보면 하나같이 원조라고 간판에 쓰여있다. 상인들끼리 약속을 한 건지, 아니면 못 본 체 그냥 눈 딱 감고 원조라고 간판에 새기는지, 그것도 아니면 같은 날 같은 시에 같이 가게를 차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러니다.


 이제는 원조가 하도 많아서 그런지, ‘시조’까지 붙는다. 심한 경우 ‘원조의 시조’까지 있다. 사실 원조나 시조나 같은 뜻이다. 그래도 다른 가게와 차별화가 가능하다면(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뭐가 됐든 좋을 것이다. 


 원조라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데. ‘왜 그렇게 원조에 집착할까’하는 생각도 든다. 대놓고 유치하다고 할 수도 없는 ‘내가 먼저야’ 논리인가. 아니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진짜배기’ 논리인가. 원조 감별이 안 되니 원, 어디가 어떤지도 분간이 안 간다.


 그런가 하면, 가게 유리에 ‘KBS, MBC, SBS’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방영됐다고 하는 스티커가 즐비하게 붙어있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말 믿음이 가는 곳도 있지만, 믿거나 말거나 식인 곳도 부지기수다. 지나가다가 본 주점에는 ‘KBS. MBC, SBS 미방영!’ 이렇게 써놓은 곳도 봤다. 술 한 잔 하고 나면 동정표가 후해지는 것을 노린 건지, 유쾌한 장난인지.


 한 가지 더 생각이 드는 것은, 요즘 생기는 음식점들은 ‘원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오픈소스 시대에 ‘처음’이 사회 속 경쟁에서 필승 전략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순박함이 아닌 재치 없는 비즈니스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음식점들만 원조에 집착하지? 아이스크림도, 컴퓨터도, 침구류도 다 원조할 수 있을 텐데. 잠깐, 좋은 생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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