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약속 없는 주말 이른 오후, 어릴 때 자주 가던 동네로 글을 쓰러 간다. 일상을 살면서 드는 작은 생각들을 모아서 글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다(미루다) 보면 두세 달이 그냥 지나가있다. 그래도 오랜만에 하릴없이 카페에서 타자를 탁탁거릴 생각을 하니 미소가 지어진다.
한 달 동안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었다. 평소엔 힘들다며 책으로 영화로 음악으로 많이 피했는데, 더 힘들 때는 그것조차 싫고 귀찮았다. 그냥 도서관에 앉아서 창밖을 보고, 눈 가는 책을 잠시 꺼내 읽고, 지나다니는 아이들을 구경하고. 그렇게 몇 주를 보냈다. 그리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다 보니 쉬운 글이 좋은 글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좀 더 쉽고 잘 읽히는 글을 써야지. 이젠… ’해파리 진저‘ 같은 제목은 짓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들도 조금 했다.
다시 나를 타자 앞에 앉게 한 건 다음 문장들이었다. ’냅의 글은 늘 변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거의 악습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이야기였다. 단순히 중독을 극복한 성공담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조금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점점 더 편안한 (더 자유롭고, 더 즐겁고, 더 자신다운)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증언하는 글이었다.‘.
한 달 동안 이어진 중독, 아니면 후유증에서 나를 벗어나게 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의 증언이었다. ‘넌 …잖아’, ‘내가 아는 승일이는 …’, ‘흐리게 눈을 뜨고 봐도 오빠는…’. 너무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한 나머지 당연히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존중들. 내가 먼저 티 내지 않아도 나서서 베풀어주는. 그런 게 사실 고팠나 보다.
캐럴린이라는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균형, 혼자 있는 시간과 남과 사랑하는 시간의 가장 적절한 혼합을 60세가 넘어서야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막무가내로 사람들과 섞여 온 나로 말하자면, 그 균형을 이제야 찾고 있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