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듯 내려온 부산에서 재미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등 떠밀려 내려온 것도 아니면서. 서울로 올라가기 전 큰 카페에서 책이라도 좀 읽고 가자 싶어 부산 중앙역에 들러 한적한 곳에 들어섰다. 오늘 읽을 책은 유명한 스님의 일기. 어느새 맞아, 맞아, 하면서 아파하던 중에 가끔 이렇게 공개적인 일기를 쓰는 일도, 사실은 가만히 다른 생각들을 들어보다가 자연스레 드는 내 생각을 건져 올리는 행위가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가끔 다른 도시나 자연을 찾게 되는 일도, 잊고 있었던 자기 마음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일이 아닌가도 싶다.
여러 좋은 글이 있었지만 이웃에 대한 얘기, 소유에 대한 얘기가 인상 깊다. ‘어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니 울컥 목이 메었다. 하루의 고된 생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눈매에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인간의 우수 같은 것을 느꼈던 것이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이웃으로서의 정다움을, 굳게 맺어진 인연의 밧줄 같은 것을 문득 실감했었다. 납덩이처럼 무겁고 답답하기만 한 이 공기 속에서 그토록 선량한 눈매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어디서 무얼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또 한 편은, ‘내면적인 욕구가 물건과 원만한 조화를 이룰 때 사람들은 느긋한 기지개를 켠다. 동시에 우리들이 겪는 어떤 성질의 고통은 이 물건으로 인해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았거나 잃어버렸을 때 그는 괴로워한다. 소유관념이란 게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를 비로소 체험한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마련이다.’.
부산역에 도착할 때쯤 지금 젊은 세대면 한국을 떠나라는 영상을 보게 됐었다. 나를 포함하여 댓글창 속에서 무수한 논쟁과 다툼, 또 한탄들. 마음이 복잡해서 가뿐한 기분으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비싸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어딘가 체한 기분. 다시 돌아갈 때쯤 되어 좋은 글들을 만나 다행이다. 핸드폰은 켰다 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책을 가까이했던 날들이 그립다.
한낮의 위선을 저녁쯤 깨닫게 되었을 때 씁쓸한 웃음이 나오는 것처럼, 부산에 내려올 때와 올라갈 때의 마음은 사뭇 다른 것 같다. 명료하게 정리하고 싶진 않다. 다만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직장에 나가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시 열심히 살아낼 용기가 아주 조금은 더 생기는 것 같다.